미 대선승리 바이든, 아직 '공식 당선인' 아니다?
대통령직인수법상 연방조달청장 '확인' 해야 '법률상 당선인
보스톤코리아  2020-11-10, 12:47:30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이율립 인턴기자 =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 대선 소식을 전한 기사 댓글과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미국에서 바이든을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인정한 바 없다", "아직 소송도 남았고 당선인의 법률적 지위도 획득한 적이 없는데 국내외 언론이 바이든을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만들고 있다"와 같은 게시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미국을 비롯한 국내외 유력 언론이 바이든을 '대통령 당선인(President-elect)'으로 명명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만큼 대선 결과를 속단해선 안 되며 공식적으로 당선인이 되기 위한 법적 절차도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도 결이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트위터에서 "언제부터 레임스트림(Lamestream) 미디어가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을 호명했느냐"며 언론에서 바이든을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지칭하는 데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레임스트림은 각각 '절뚝거리는'과 '주류'를 뜻하는 영어 '레임(lame)'과 '메인스트림(mainstream)'의 합성어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류 언론을 모욕할 때 자주 써왔다.

◇美 대통령직 인수법 "대통령·부통령 당선인, 조달청장이 '확인'해야"
미국법에 비춰 바이든이 아직 '법률상' 당선인 신분을 인정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표 집계가 아직 최종 끝나지 않은 가운데 현재까지의 개표결과만으로도 바이든 당선인이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수(270석)를 초과 확보했다는 점에서 미국 언론은 바이든을 당선인으로 부르고 있지만 한국의 '당선증 교부'에 해당하는 공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대선 투·개표의 전 과정을 관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개표 결과에 입각해 '당선증'을 교부함으로써 당선인 신분을 부여하지만 한국의 중앙선관위와 같은 연방 조직이 없는 미국은 다르다.

미국 대통령직 인수법(Presidential Transition Act)에 따르면 일차적으로 대선 승자를 판단할 권한을 보유한 이는 연방조달청(GSA·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청장이다.

대통령직 인수법은 "'대통령 당선인(President-elect)'과 '부통령 당선인(Vice-President-elect)'이라는 용어가 각각 GSA 청장이 '확인한(ascertained)' 유력 당선 후보를 뜻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이 법이나 연방 법규 어디에도 당선인 확인을 위한 결정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상세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 법 취지가 당선인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선인의 인수위가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사무실, 집기 등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예산과 서비스 지원을 위한 제도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당선인 윤곽이 드러나고 하루 안에 GSA 청장이 '대통령 당선인'임을 명시한 편지를 인수위에 보내 지원 사항을 안내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후 인수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에밀리 머피 현 청장은 대선이 치러진지 거의 일주일이 지난 10일(미 동부 현지시간) 현재까지 대선 승자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대신 GSA 대변인은 9일 발표한 성명에서 "'확인(ascertainment)'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며 "GSA와 청장은 법에서 정한 모든 요건을 계속해서 준수하고 이행할 것이며, 2000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선례를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미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당선인의 인수위에서 활동하고 이후 연방 노동부 부장관을 지낸 크리스 루는 9일 트위터에서 "지난 2008년 11월 GSA가 오바마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는 데까지는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날 그는 2008년 당시 GSA 청장이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 앞으로 보낸 공식 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문서에는 날짜가 2008년 11월 5일로 기록됐는데, 당시 미 대선 투표는 11월 4일 치러졌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 역시 2016년 대선 직후 트럼프 당시 후보를 당선인으로 명명했으며, 트럼프 당선인 인수위는 GSA 지원을 토대로 정권 인수 작업을 진행했다.'

◇ 친트럼프 폭스뉴스 포함 국내외 언론 바이든 '당선인' 호칭…각국 정상도 바이든에 축하 인사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은 바이든을 '대통령 당선인'으로 칭하고 있으며, 이른바 '친트럼프' 방송으로 알려진 미 폭스뉴스도 마찬가지다. 전체의 과반 이상 선거인단을 확보해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후보를 당선인으로 명명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등 세계 각국 정상들도 이미 바이든에게 당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미국 내에서도 공화당 출신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현 집권 공화당 몇몇 의원들도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했다.

이에 '바이든의 정권 인수를 허용하라'며 GSA의 머피 청장을 압박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SNS 등 온라인에 머피 청장의 사진을 게재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기용한 인물로 현재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정권 이양을 위한 물적 지원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언론들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의 원활한 정권 인수 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며 머피 청장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잘 알려지지 않은 트럼프의 지명자(appointee)가 바이든의 정권 인수 작업에 필요한 자원을 책임지고 있는데 꼼짝도 안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ABC 방송은 "트럼프가 바이든의 정권 인수 작업을 어지럽힐 수 있다"며 "머피 청장의 판단에 바이든이 명백한 승자라면, GSA는 바이든 인수위에 정권 이양 열쇠와 새 행정부를 만드는데 필요한 990만 달러를 언제 건네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인수위는 "대선 결과가 뚜렷해지면 GSA는 통상적으로 24시간 안에 당선인이 누구인지 공식화한다"며 "(이런 절차를 진행하지 않으면) 인수팀이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0년 美 대선서 부시·고어 법정 다툼으로 지연 사례…"지금과 전혀 다른 상황"
GSA가 이번처럼 당선인 확인과 그의 인수위 지원 절차를 미룬 적은 지난 2000년 제43대 대통령 선거 이후 20년 만이다. 하지만 법률에 따라 진행된 플로리다주 재개표의 결과에 따라 선거 승패가 뒤집힐 수 있었던 2000년 상황과 이번 상황은 차이가 있다.
    
당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로 나선 앨 고어 부통령은 한 달 넘게 법정 다툼을 벌였다.

2000년 11월 7일 선거 직후 부시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와 고어 부통령이 패배를 시인했으나, 플로리다주가 득표 차가 0.5% 이내일 경우 자동으로 재개표를 하도록 규정한 주법에 따라 재개표를 선언한 데 따른 것이었다.

두 후보의 법정 다툼은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수작업 재개표 결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한 2000년 12월 12일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마무리됐고, 다음날 고어 부통령이 패배를 공식 인정하면서 부시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결국 부시 당선인의 인수위는 12월 14일에야 인수위 사무실 열쇠와 530만 달러의 자금을 건네받으며 본격적인 정권 인수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미 연방 정부를 담당하는 리사 레인 WP 기자는 트위터에서 "부시-고어 때는 (지금과)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며 "GSA가 선거 승자에게 열쇠를 건네주지 않은 것은 현대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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