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18세 풍월주風月主 춘추공春秋公(2)
보스톤코리아  2020-10-12, 10:42:17 
화랑세기에 기록된 춘추공조의 첫 부분을 인용하면,
[18세 춘추공은 우리 무열대왕이다. 얼굴이 백옥과 같고 온화한 말로 말을 잘했다. 커다란 뜻이 있었고 말이 적었으며 행동에는 법도가 있었다. 유신공이 위대한 인물로 여겨 군君으로 받들었으나, 무열왕이 사양하여 부제가 되었다. 유신공이 퇴위했으나 보종과 염장 양 공이 있었기에 왕은 양보하여 기다렸다. 이에 이르러 풍월주에 오르니 보령이 24살이었다. 유신공의 누이인 문희文姬를 화군花君으로 삼아 장자인 법민法敏을 낳았는데 곧 우리 문무제文武帝이다.]

603년 김호림이 14세 풍월주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보종을 부제로 삼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만호태후의 명으로 15살의 나이로 화랑에 입문한 김유신을 부제로 삼았다. 즉 화랑도의 2인자인 부제의 자리를 미실의 아들인  보종(아버지는 설원랑)에서 김유신으로 교체하였다. 그리고 만호는 미실을 위로하기 위하여 미실의 손녀 영모(하종의 딸, 하종은 미실이 세종과 낳은 아들이다)와 김유신을 혼인시켰다. 삼국사기의 기록만 보면 김유신이 환갑의 나이에 태종무열왕(김춘추)의 딸인 지소공주와 결혼한 기록만 나오는데, 화랑세기를 통하여 이미 김유신이 10대의 나이에 미실의 손녀인 영모를 아내로 맞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5세 풍월주는 보종이 아닌 김유신에게로 이어졌다. 이때 대원신통 계열의 낭도들이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태후 만호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고 또한 김유신의 위용을 감당할 낭도들이 없었다. 612년에 풍월주의 위位에 오른 김유신은 어린 김춘추를 부제로 삼았다. 김춘추는 602년생이니 당시 만 10세였다. 

약 3년 후 16세 풍월주는 보종에게로 이어졌다. 부제였던 김춘추가 어리기도 했지만 보종을 따르던 대원신통계의 낭도들을 끌어안아 화랑의 화합을 도모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부제는 염장이 임명되었다. 보종이 약6년간 풍월주를 역임하였고, 그 다음 17세 풍월주는 염장에게로 이어지면서 염장도 약 6년간 풍월주의 위에 있었다. 염장이 풍월주에 있을 때는 김흠순이 부제가 되었다. 김흠순은 김유신의 동생이다. 그리고 김춘추가 24세인 626,7년에 18세 풍월주로 취임하였다. 
문무왕 김법민이 626년에 태어났으니 당시는 진평왕이 재위하고 있었고, 덕만(선덕여왕)이 공주 시절이었다. 그리고 김춘추가 풍월주에 오르기 이전 김유신의 계략으로 춘추는 유신의 동생 문희를 만나 사랑을 하고 둘째 부인으로 맞아드리는 장면이 화랑세기에서 이어지고 있다. 화랑세기에는 김춘추에 관한 기록이 비교적 짧다. “왕의 대업은 사책史冊에 있어 여기에는 기록하지 않는다” 는 김대문의 기록으로 봤을때 당시에 많은 기록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화랑세기에는 위의 인용문과 같이 그의 외모와 성격, 의지 등과 이어지는 내용은 김유신의 동생 문희와 결혼하게 되는 사연과 장소, 그리고 간략한 세계世系가 기록되어 있다.

김춘추는 문희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부인이 있었다. 16세 풍월주를 역임한 보종의 장녀 보라가 김춘추의 첫 부인이었다. 
김춘춘의 첫 부인 보라의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김춘추의 장녀 고타소가 문희의 소생으로 게다가 김법민(문무왕)의 동생으로 나오는데 화랑세기의 기록에 보면 고타소는 첫 부인 보라의 소생이고 법민보다 먼저 태어났다(문무왕 김법민은 626년생이다). 화랑세기의 기록이 설득력을 얻는데는 고타소의 죽음으로 봤을때 분명하다. 때는 642년, 벼슬이 이찬(2등급)에 오른 김품석이 대야성의 도독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고타소 역시 남편과 함께 대야성에서 살았다. 그때 백제의 장군 윤충이 1만의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을 침공했다. 이에 부하 검일은 적군과 내통하고 창고에 불을 지른 후 백제군에 항복했다. 그러자 민심은 흉흉해지고 군사들의 사기는 떨어졌다. 부하 서천은 항복을 권유했고, 화랑 죽죽은 결사항전의 각오로 항복을 만류했다. 김품석은 항복하면 살려준다는 말을 듣고 항복했으나 속임수에 빠진걸 금방알고 처자를 죽이고 자살했다. 그러자 화랑 죽죽은 남은 병사들을 모아 성문을 닫고 대항했지만 결국 대야성은 함락되었고 죽죽은 부하 용석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 기록으로 봤을때 고타소가 법민의 동생이라면 당시 그녀의 나이가 아무리 많아야 15세이다. 15세에 결혼은 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이미 자식(들)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랑세기의 기록으로 보면 김춘추가 문희와 사통하여 임신을 시켰놓고도 결혼을 망설인 것은 이미 부인 보라가 있었고, 게다가 당시 가장 미인 중의 한명이었다는 보라를 닮은 딸 고타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춘추가 602년생이기에 아마도 고타소는 623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측해본다. 검일은 왜 품석을 배반했을까? 그는 사랑하는 부인을 품석에게 빼앗겼기에 이미 원한을 품고있다가 윤충이 쳐들어오자 적과 내통했다. 검일은 함께 투항한 모척과 함께 660년 백제 멸망 후 사비성에서 신라군에 의해 처형되었다. 문무왕 김법민은 백제의 태자 부여융에게 모욕을 주면서 누이 고타소의 고혼孤魂을 달랬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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