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86 |
화랑세기花郞世紀, 12세 풍월주風月主 보리공菩利公(5) |
보스톤코리아 2019-09-09, 12:12:07 |
보리와 하종의 관계와 그들의 어머니들인 숙명공주와 미실의 관계를 화랑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인용문에 등장하는 공公은 보리이고 주형은 하종이다. 그리고 공주는 숙명공주를 말한다). [공은 주형主兄에게 충성을 다하여 곁을 떠나거나 명을 어긴 일이 없었다. 미실 또한 칭찬하여 말하기를 “공주에게 좋은 아들이 있으니 행운이 나보다 많다” 했다. 매번 궁중에서 음식을 내리면, 반드시 공을 불러 주며 말하기를 “나의 사랑하는 조카야! 너의 형을 잘 도와라” 했다. 공주는 이에 오래된 감정이 조금 누그러 들었다. 만년에는 서로 왕래했으니 대개 공이 힘쓴 때문이다.] 다음은 진골정통의 주主인 만호태후와 대원신통의 주主인 미실이 자신들의 인맥姻脈을 구실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속셈이 보이는 구절이 보리의 적처嫡妻를 서로 자신들의 인통에서 맺으려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화랑세기에 보면, [그 때 만호태후와 숙명공주는 힘써 진골정통을 도왔다. 미실이 두려워하여 애함艾含을 공과 결혼시키려 했다. 만호가 거절하고 그의 딸 만룡낭주를 공의 적처로 삼았다. 공의 나이 겨우 13살이었고, 만룡은 7살이었다. 이화공은 만룡이 어리기 때문에 꺼렸다. 공주가 “사도 또한 7살에 진흥대제에게 시집갔는데, 오히려 부부의 즐거움이 있었다. 무엇 때문에 꺼리는가?” 했다. 이화공이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만호태후는 공의 포형胞兄인 정숙태자를 사랑하여 만룡을 낳았다. 이에 이르러 미실의 딸인 애함을 공에게 시집보내려 한다는 말을 듣고, 대원신통이 진골정통을 빼앗을까 염려하여, 특히 만룡을 주려고 한 것이다. 이에 만룡을 불러 무릎에 앉히고 묻기를 “사도태후는 7살에 시집가서 진흥제를 잘 모셨는데 너 또한 능히 할 수 있느냐?” 했다. 만룡이 말하기를 “지아비가 누구입니까?” 했다. 공이라고 대답하자, 만룡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의 좋은 형입니다. 시집가기를 원합니다” 했다. 태후는 이에 친히 신궁에 가서 공주례를 고하고 포사鮑祠에서 길례를 행했다.]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먼저 공公은 보리공을 말한다. 보리의 부모는 이화공(4세 풍월주)과 숙명공주이다. 이화공의 부모는 1세 풍월주 위화랑과 준실이다. 숙명공주의 부모는 태종(이사부)과 지소태후이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 삼촌인 입종과 혼인하여 진흥왕을 낳았다. 만호태후, 만호의 부모는 이화랑과 지소태후이다(이화랑은 지소태후의 침신이었다가 지소의 딸 숙명공주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드디어 월담하여 궁밖에서 살다가 지소의 허락으로 혼인하였다). 만호는 진흥왕의 장남인 동륜태자와 혼인하여 제26대 진평왕과 백반, 국반을 낳았다. 그리고 동륜이 요절하자 정숙태자(부모는 진흥왕과 숙명공주, 이들은 동복이부 남매이다)와 사통하여 만룡낭주를 낳았다. 이 만룡이 7살에 보리공과 혼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실은 대원신통의 인맥姻脈을 확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딸 애함을 보리공과 혼인시키려 했고, 반면에 미실의 세력 확장을 염려한 만호가 자신의 딸 만룡을 보리공과 혼인시키면서 진골정통의 인맥을 키웠다. 위 인용문 마지막 문장에서 신궁과 포사의 기능과 역할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나란히 있었으며 공주가 되는 의식은 신궁에서 치루었고, 결혼식은 포(석)사에서 했다. 결국 포석사와 신궁을 뗄 수 없는 쌍으로 있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신궁과 포사에 관해서는 8세 풍월주 문노편에서 상세히 다루었기에, 여기서 첨언하는 것은 포석사(포석정)가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였을 당시의 광경을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처럼 다만 유흥의 장소가 아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포사의 역할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의 기록은 없지만 당시에는 분명 신궁과 함께 성소로서 혼례를 비롯한 길례를 올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 그는 18세 풍월주를 역임하였다. 포(석)사가 화랑세기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김춘추와 문희가 혼인을 한 장면이다. 문희는 김서현의 차녀로, 즉 김유신의 둘째 여동생이다. 김춘추와 김문희의 결혼, 어느날 문희의 언니 보희가 서악에 올랐는데 큰물이 경성에 가득한 것을 보고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문희가 비단치마로 그 꿈을 바꾸었다. 며칠 후 김유신이 김춘추와 집앞에서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치마裙를 밟아 옷섶의 옷고름을 찢었다. 집에 들어가서 꿰매기를 청했고, 보희에게 시키고자 했는데 몸이 불편하여 문희가 바느질을 대신했다. 김유신은 자리를 피했고, 그들을 사랑을 나누었고, 문희는 임신을 했다. 한편 김춘추의 정궁부인 보라는 16세 풍월주 보종공의 딸인데 당시 아름다운 딸 고타소를 낳아서 김춘추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그래서 문희를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자, 김유신이 장작을 마당에 쌓아 문희를 태워 죽이려 하면서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다그쳤다. 이에 연기가 피면서 남산에서 유희 중이던 선덕여왕의 주목을 받았고, 왕의 명으로 김춘추는 포사에서 길례를 올렸다. 얼마 후 보라궁주가 출산을 하다가 죽었기에, 문희가 정궁이 되었고 그들은 아들 법민을 낳았다. 그가 바로 세계 왕조사에 전례가 없는 수중릉의 주인공 문무왕 김법민이다. 보희는 꿈을 바꾼것을 후회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고 있다가 김춘추가 후처로 삼아서 아들 지원과 개지문을 낳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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