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53 ] 검은 것이 흰 것이다?
보스톤코리아  2019-03-18, 10:47:36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동유럽에 벨라루스란 작은 나라가 하나 생겼다. 남쪽에는 우크라이나, 북쪽에는 발트 3국이라 불리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서쪽의 폴란드와 동쪽의 러시아로 둘러싸인 인구 약 천만의 작은 나라이다. 

필자가 이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딱 하나, 그 이름 때문이다. Byelorussia라 쓰고 우리나라에서는 ‘백 러시아’라 번역한다. 그렇다면 byelo-가 ‘백’이란 뜻일 것이다. 요즘엔 Belarus란 짧은 이름을 사용하지만 아무튼 byelo-는 ‘희다’란 의미이다. 영어로도 White Russia라 부른다. 

원시 인도유럽어에서 bhel-은 ‘빛나다, 번쩍이다, 타다’라는 의미와 더불어 ‘희게 빛나는’이란 의미를 가졌다. 여기서 나온 byelo-나 bel-이 white를 뜻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bleach(표백하다), blur(성에가 얼다), blaze(섬광) 등에서 보듯 bl-로 축약되어 ‘흰색’이란 의미를 가진다. blanch는 bleach와 같은 의미이지만 원예에서 햇빛을 가려 식물을 희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름병’이란 뜻의 blight는 식물이 흰색으로 마르는 병을 말하는데, 여기서 확장되어 식물에 해로운 안개가 자욱하고 흐린 대기를 뜻하기도 한다. 

beluga는 흰색 돌고래, 흰색 철갑상어를 말한다. 고대 켈트족의 축제인 Beltane은 5월 1일을 기념하는 날인데, 이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날이 불처럼 환하게 타오르는 봄여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blue(푸른)은 원래 ‘창백한’이란 뜻에서 하늘색을 의미했었다.  

이 어원에 유독 관심이 가는 이유는 black(검은)과 어근이 같기 때문이다. 흰색이 검은색과 같다고? 어원사전에서도 black(검은)과 byelo-(흰)의 어원이 같은 이유로 빛이 있을 때 흰 색이고 없을 때 검은 색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담요(blanket)를 뒤집어쓰면 깜깜하게 되니까 black과 닿아있고,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blank)도 검은 색과 연관이 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암흑의 세계일 것이다. blind(눈이 먼), blindfold(눈가리개, 속임수) 등은 black과 의미가 상통한다. blench는 강렬한 빛에서 눈을 돌리듯이 ‘움찔하다, 뒷걸음지리다’란 의미이다.

명성에 오점이 가는 것을 blemish라 한다. 마치 힌 바탕에 검은 얼룩이 생긴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blend(섞다) 역시 여러 가지를 뒤섞어서 탁하게 혹은 검게 된다는 의미에서 생긴 어휘이다. ‘황량한, 삭막한’이란 뜻의 bleak는 원래 영국방언에서 ‘창백한’이란 뜻이었다. blush는 ‘홍조가 생기다’라고 번역하는데 마치 불타오르듯이 얼굴이 붉게 된다는 뜻이다. 

인도유럽어의 /b/는 라틴어에서 종종 /f/로 바뀌기도 한다. 유명한 예가 brother ~ frater이다. 마찬가지로 ‘희다’는 뜻의 bl-은 라틴어에서 fl-로 나타나기도 한다. flame(불꽃), flamboyant(타는 듯한, 현란한), flammable(타기 쉬운) 등이 있다. 프랑스 요리 용어인 flambé는 고기나 생선에 브랜디 등을 붓고 불을 붙여서 눋게 한 요리이다. 역시 프랑스어인  flambeau는 ‘횃불’을 뜻한다. flamingo(홍학)는 붉은 색으로 인해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flagrant(명백한, 악명 높은)은 마치 불타는 듯이 분명하다는 의미이다. fragrant(향기로운)과 혼동되지 않도록 철자를 조심해야 한다. fulgent(빛나는)과 더불어 effulgent는 밖으로(ex-) 빛나는(ful-) 것이니까 ‘광채가 나는, 눈부시게 빛나는’이란 뜻이다. conflagration은 함께 타는 것이니까 ‘큰 화재’이고 deflagration은 타는 것에서 떨어지는 것이니까 ‘폭연작용’을 말한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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