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와 Jon Carter Covell 박사 2 |
보스톤코리아 2019-02-18, 10:34:45 |
- 자작나무의 이름은 영어로 Birch tree라고 부른다. - 개마고원에서는 봇나무라고 부른다. - 일본에서는 신라를 백목(白木)이라고 쓰고 시라기로 발음했다. 이는 일본사람들이 자작나무와 신라를 똑같은 뜻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작나무가 신라라는 나라의 실체라는 뜻이다. - 자작 나무를 태울 때는 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들려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 부패를 막고 썩지 않는 나무로 유명하다. - 껍질을 벗겨내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하였다. <팔만대장경> 몽고의 침입을 막으려고 고려 고종 23년 (1236년)에 착수하여 고종 36년 (1251년)에 완성하였다.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국보로 지정되었다. 대장경판은 일부만 자작나무로 제작되었다. 일본 승려들은 한국에서 대장경 영인본이나 대장경 판을 얻어가려고 애를 써왔었다. 고려때부터 일본인들은 대장경 사본 한 질을 구하려고 20여 차례에 걸처 시도해 왔었다. 그들은 여러 대장경 중에서 가장 탁월한 내용에 정확하게 판각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19년 한일 합방이 되자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은 조선에서 첫번째 식민 작업으로 고려 대장경을 통째로 일본으로 가져가려 했었다. 우리에게는 천만번 다행한 일이었다. 결혼식을 가리켜 화촉(樺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자작나무 껍질을 말아서 태운다는 뜻이라고 한다. 자작나무가 타들어 가면서 내는 자작자작하는 소리와 그윽한 향기가 어우러져 신랑신부에게 행운의 축복을 선사해 준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자작나무가 없어 부득이 밀초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자작나무 껍질을 태우는 화촉의 화(樺)자가 촛불을 의미하는 빛날 화(華)자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Jon Cater Covell 박사는 오늘날까지 무속 신앙에 전승되고 있는 자작나무의 흔적을 북방 시베리아 종족에 대한 집단 기억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우리 한민족의 먼조상들이 시베리아 초원을 가로질러 남쪽의 한반도로 이주했을 때 우주수를 숭배하던 자작나무에 대한 집단 기억이 오늘날 몽고나 브리아트 민족들의 풍습을 통해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솟대, 당목, 신목에 성황당이 있는 것처럼 몽고, 바이칼 지역에도 솟대, 당목, 신목이 있고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어와가 있다. 그들은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향을 사르고 보드카나 쌀을 뿌려 고수례를 들인다. 먼길을 떠날 때는 서낭당에 증표를 남기고 길을 떠나는 자가 나무를 헝겁으로 치장하거나 돌무더기를 쌓아 소원을 빌고 자연에 감사를 드린다. 제의에 쓰인 음식을 고수례로 다시 대지에 감사를 전한다. 기도의 중심에는 천신과 지신이 있고 자작나무가 있다. 브리아트 샤먼의 집 한가운데에는 "뚜르게"라고 부르는 자작나무 신목이 가운데가 뻥뚤린 지붕위로 솟아있다. 그리고는 샤먼이 신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몽골이나 바이칼 호반에서 자작나무는 그들 무속의 성수로 여겨지고 있다. 그들이 성스러운 곳이라고 여기는 기도처, 제사처 근처에는 어김없이 자작나무가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무당이 매개자가 되어 초월적 세계로 가는 우주목이 바로 자작나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당굿에 자작나무가 등장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자작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워 흰종이를 오려만든 지화를 무구(巫具)로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바이칼의"바이"라는 말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샤먼을 지칭해 주는 말이고 "칼"은 골짜기나 고향을 의미한다. 합쳐서 "신들의 고향"이라는 말이 된다. 사람들은 신들의 본향인 바이칼 알혼섬의 부르한 바위를 추앙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들의 일부가 한반도로 이주하여 정착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산, 백두산을 불함산으로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몽골어로 부르한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바이칼에는 아주 많은 신들이 있다. 그 신들의 중심에 자작나무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심청전, 콩쥐팥쥐, 백조와 사냥꾼, 아바이 게세르 등 끝이 없다. 아바이는 함경도에서 아버지나 어르신 이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브리아트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형제였던 것이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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