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30 ] 목욕하는 여인이라니?
보스톤코리아  2018-09-24, 10:42:24 
지금은 은퇴했지만 당대에 꽤 유명했던 어떤 교수님께서 오역논란에 시달린 적이 있다. 초서가 쓴 <켄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The Wife of Bath를 ‘목욕하는 아낙네’라 번역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번역은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번역이란 아무리 잘해도 욕먹기 딱 좋은 일이다. 오죽하면 traduttore, traditore(번역은 반역)이란 이태리어 구절이 생겨났을까 싶다. 사족이지만 두운을 살린 우리말 번역은 원어의 두운을 반영한 재치 있는 번역이 아닐 수 없다. 

얼핏 보면 The Wife of Bath는 정말 ‘목욕하는 아낙네’처럼 보이기도 한다. bath는 ‘목욕’이란 뜻이니까. 하지만 그 교수님이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이런 터무니없는 실수는 피할 수 있었다. 우선 ‘목욕하는’이란 수식어가 되려면 영어에서 굳이 of bath와 같은 형태로 쓸 이유가 없다. 오히려 bathing과 같은 현재분사가 더 자연스럽다. a bathing lady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 분은 이 책의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영국의 지리에 대해서도 연구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Bath는 영국의 지명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로마제국은 가는 곳마다 도로와 목욕탕과 수로를 건설했다. 북쪽으로는 멀리 스코틀랜드부터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을 정복하더라도 그곳에 목욕탕과 도로와 수로를 건설했다. 필자는 방송녹화차 튀니지를 비롯한 이웃 나라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의 허허벌판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목욕탕 유적지를 보고 정말 많이 놀랐었다. Bath는 말하자면 로마의 목욕탕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옳은 번역은 ‘바쓰의 부인’ 혹은 ‘바쓰의 아낙네’이다. 미국영어식으로 발음해서 ‘배쓰의 부인’이라 해도 상관없다. 아무튼 지명을 번역할 필요는 없다. New York을 발음대로 ‘뉴욕’이라 하지 달리 어떻게 번역하겠는가?

비슷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지명이 Reading이다. 실제로 어떤 대학의 영문과에 University of Reading 출신의 한 교수지망생이 지원을 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모든 교수들이 마음속으로 ‘독서대학? 이게 도대체 뭔 대학일까?’ 의아해 하고 있던 중에 한 용감한 (혹은 눈치 없는) 교수가 지원자에게 물어보았다. “독서대학을 졸업하셨나요?” 어리둥절해하던 지원자가 독서대학이 아니고 영국의 레딩에 있는 레딩대학이라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해하는 표정들이 풀리지 않자 그 지원자가 우리나라 축구선수 설기현이 뛰었던 레딩이라고 하자 모두들 ‘아하’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면 그렇지, 대학이 사람도 아닌데 무슨 독서를 하겠는가? 물론 매사추세츠 주의 레딩(Reading)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리딩’이라고 발음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그런지 구글의 한국어 번역 지도에도 ‘리딩’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지명뿐 아니라 인명이라도 우리는 아는 단어를 보면 뜻을 파악하려는 습성이 있다. 물론 Smith란 이름은 먼 옛날 ‘대장장이’에서, Archer는 ‘궁수’에서, Brewer는 ‘술장수’에서 유래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김씨, 박씨 등의 성에 특별한 뜻을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영어이름에도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자우환이라 아는 단어가 성씨일 때 왠지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필자의 지인들 중에는 Barber, Painter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물론 이발사(barber), 화가(painter)가 아니다. 필자는 그들을 볼 때마다 Mr. Non-barber Barber(이발사 아닌 바버씨), Mr. Non-painter Painter(화가 아닌 페인터씨)라 부르곤 한다. 옛날에 들은 유머가 생각난다. 백인들이 인디언과 싸움을 벌이던 와중에 한 백인이 인디언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그에게 falling rock을 조심하라고 충고를 했다. 인디언 마을을 지나는 동안 전혀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볼 수 없어서 기우였다고 안심하면서 천천히 말을 타고 가던 그는 그만 인디언이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 인디언 이름이 Falling Rock이었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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