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견디는 방식(3) |
보스톤코리아 연재소설 |
보스톤코리아 2018-08-06, 10:38:26 |
나에게 발생되는 문제는 부모들이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던 시기였다. 육성회비 밀린 것을 두고 엄마는 늘 기다리라고 했지만 내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엄마는 내 육성회비 주는 것을 내내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 이름은 육성회비 미납자 명단에 늘 있었고 종종 뒤에 나가 서 있기도 했다. 어떤 때는 복도에 나가 서 있기도 했다. 엄마가 학교 청소를 하다가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왜 이렇게 나와 있냐고 물어봤을 때 난 엄마를 한참 노려보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들이 왜 엄마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나에게 주기적으로 모욕을 주는지도 알았다. 어른들은 자신이 말을 하기에 불편한 것보다 나를 벌 줌으로서 내가 엄마를 졸라 육성회비를 내도록 할 심산이었겠지만 난 엄마에게도 선생들에게도 독기를 품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 모욕을 감수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복수하고 있었다. 가을이 돼서야 학교에서 마지못해 엄마에게 말했고 엄마 봉급에서 육성회비를 제하고 받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집에 돌아가는 삼십여 분 동안 돌멩이 하나를 끈질기게 발로 차면서 집에 왔다. 집에 돌아와 돌멩이를 수돗물을 틀어 씻어 보니 거뭇거뭇하던 돌멩이가 하얗게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돌멩이를 서랍에 넣고 몇 시간을 울고 나니 어둑어둑한 저녁이다. 오빠들이 돌아오고 엄마도 아버지도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저 당시의 정황을 이야기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단 한마디다. ‘저 쇠귀신 같은 년!’이다. 나의 밀린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 바람에 큰 오빠의 수학여행비가 밀리기 시작했을 때 난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오금을 졸여야 했다. 아무도 내 감정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뒤에 쳐진 나를 위로하는 한 가지가 찾아왔다. 그건 그럴 듯 한 사람이 되고 싶은 허영이라는 것인데 이놈이 발가락 끝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모든 것이 견딜 만 해 졌고 독기 대신 질겨지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만 영악함이 자라나기에는 충분한 나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등록금 고지서가 나오면 거침없이 엄마에게 오빠 등록금 보다 먼저 줄 것을 요구했다. 엄마가 내게 한마디 하려고 목을 치켜세우면 큰 오빠가 먼저 말을 한다. “엄마 정희부터 주세요.“ 난 속으로 웃는다. ‘지가 무슨 성인군자라고 나 먼저 주라 마라 하고 자빠졌어’ 난 그러는 오빠가 더 꼴값으로 보였지만 우선 등록금을 먼저 받는 게 목적이므로 잠자코 순한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엄마에게는 점점 더 밉살맞은 딸이 되어 갔다. 은미를 멀리하고 만화방 대신 소설들을 섭렵하기 시작하며 다른 아이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길을 걷는 것으로 구차한 입장의 허전함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비틀리기 시작한 시점에 은미가 있었고 첫 희생타였으니 난 은미를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아이의 머리에서 설금설금 기어 다니던 이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성금 성금 살아 올라오던 그 돼먹지 못하고 서글픈 계집아이의 성격이 결정지어지던 그 시기의 초여름, 학교 앞 정문을 노려보던 나를 또한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은미가 과일과 차를 내오고 차를 두어 모금 마신 후 담배를 하나 꺼내 문다. 난 50이 넘어가면서 얼굴형이 둥글둥글해 지고 몸의 체형도 달라지고 있었다. 은미는 초등학교 때의 갸름한 얼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은미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와 은미의 동양적인 눈매가 잘 어울린다. “너도 피울래?” “아니. 난 그냥 차 마실게.” “무슨 글 쓰는 년이 담배도 못 피우니. 자 말해 봐. 뭣 땜에 날 실실 피했는지….” 은미는 꼭 알아내겠다는 것이라기 보다 그 이야기가 시작돼야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네 머리에 이가 있는 걸 봤어.” 은미의 얼굴이 살짝 째푸려진다. “ 그랬구나. 그 나이에 충분히 이해되는 이유로군.” “ 내 못된 성격이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했어. 이 나이가 되어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은미가 담배를 비벼 끄며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미안할게 뭐 있냐고 한다. 한쪽 다리를 길게 뻗어 맞은편 의자를 발가락을 걸어 가까이 끌더니 다리를 척하고 올려놓는다 “난 네 가정 형편을 다 기억해. 술주정뱅이 아버지, 청소부 엄마 그리고 세 오빠, 네가 빌려준 단편집의 표지 색깔도 기억해. 네가 현진건의 ‘빈처’를 꼭 읽어 보라고 했지. 읽었지만 뭔 소리인지 그땐 하나도 이해 못했어. 난 나 혼자 너희 동네가 아니라 우리 동네의 만화방을 가기 시작했지. 넌 나에 대해 기억하는 거 뭐 한 가지라도 있어?” 다음 호에 계속... 유희주 작가 유희주 작가는 1963년에 태어나 2000년『시인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2015년 『인간과 문학』에 소설 『박하사탕』을 발표하며 소설 작품 활동도 시작했다. 시집으로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엄마의 연애』, 산문집으로 『기억이 풍기는 봄밤 (푸른사상)』이 있다. 유희주 작가는 매사추세츠 한인 도서관 관장, 민간 한국 문화원장, 레몬스터 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코리안릿닷컴(koreanlit.com)을 운영하고 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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