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격양가擊壤歌
보스톤코리아  2016-11-28, 11:57:39 
  미국에 처음 왔을 적이다. 헷갈리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화폐단위는 말할 것도 없다. 갤런과 리터, 파운드와 킬로그램은 오히려 견딜만 했다. 어려움은 거리계산에 있었다. 마일과 킬로미터 사이에서 자주 헷갈렸고, 머리가 여간 복잡한게 아니었다. 처음에 올적에 대부분 미국고속도로의 법이 정한 제한속도는 55마일였다. 도대체 55마일은 몇킬로미터인가. 그닥 궁금할 건 없는데, 혼란스러웠던 거다. 65마일은 한 100킬로미터 된다. 하지만 안개가 껴서 길을 볼수없다면, 제한속도는 소용없다. 어차피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다. 

  내게 최장의 거리는 500킬로미터 였다. 서울과 부산사이의 거리인데, 그래봐야 300여 마일이다. 오래전 중부에서 서부로 이사를 가야 할 때다. 내 선친이 물으셨다. 얼마나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냐. 숫자나 마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생각끝에 말씀드렸다. 서울과 부산을 적어도 네차례 왕복거리. 이사갈 곳은 2500마일 떨어져 있으니, 4000여킬로미터 였던거다. ‘아이고, 멀기도 하다’는 가벼운 선친의 탄식이 전화를 통해 들려왔다. 선친께서도 서울과 부산까지가 가장 먼 거리였다. 그보다 먼 거리는 당신의 상상想像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다. 

  중국 요순시절 격양가擊壤歌이다. 태평성대에 부르는 노래인데, 백성은 배부르고 등이 따습다면 누가 임금이든지 상관없다는 게다. 임금이 멀리있건 가까이 있건 문제없다는 말일게다.  

해가 뜨면 일하고/해가 지면 쉰다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밭을 갈아서 먹으니
임금의 덕/힘力인들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격양가擊壤歌)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있다. ‘힘은 두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한다.’ 피차 느끼는 힘은 거리가 멀면 멀수록 작다는 소리다. 역시 과학자들은 하나마나 한 소리를 어렵게 말한다. 세상이 어수선하기도 하다. 그동안, 내게 임금님들은 아주 먼 곳 구중궁궐에 머물고 있었다. 그 양반들의 힘이 내게 미치지 못하는 듯 했던 거다. 그렇다고 나만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청와대나 백악관까지 가는 거리가 좁혀진 것인가. 먼곳에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상관없어야 할 지도자들이 성큼 우리에게 다가선듯 하다. 심지어 애들 입에서도 그분들의 이름이 함부로 오르내리니 말이다. 차라리 이건 두렵다. 

  거리가 가깝다 해도 안개가 자욱하면, 앞을 볼수는 없다. 어둡다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거다. 이건 내 생각이다. 임금은 너무 가까우면 부딪친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면 덕이 미치지 못할까 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인게라. 가가可呵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하는구나 (욥 17:12)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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