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먹이사슬, 트위드 링 스캔들
보스톤코리아  2016-11-28, 11:42:07 
140년 전 오늘인 1876년 11월 23일, 윌리엄 트위드 (William M. Tweed)가 스페인 경찰 당국에 의해 미국으로 인계되었다. 

1850년대 말에서 1870년대 초반까지 민주당의 뉴욕 지구당(Political Machine)인 태머니홀 (Tammany Hall)의 지도자였던 트위드는 보통 “Boss Tweed”로 불리는 강력한 실세 정치인이었다. 지금은 폴리티컬 머신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지만, 남북전쟁 직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뉴욕의 태머니 홀, 필라델피아의 공화당 머신, 시카고의 민주당 머신 등 대도시의 폴리티컬 머신들이 그 지역의 정치와 선거를 좌지우지하고, 또 연방 정부에도 (부정적인 의미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조직이다. 트위드가 이끌었던 뉴욕의 태머니 홀은 19세기 후반부 뉴욕시와 뉴욕주의 정치를 장악한 막강한 권력이었다. 

트위드는 1852년 미국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1858년 뉴욕 카운티 감리위원으로 그리고 태머니 홀의 우두머리로 승승장구했다. 1867년 뉴욕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는데, 이때는 비리 사업가의 대명사인 제이 굴드와 빅 짐 피스크의 주가 조작을 ‘합법적’으로 지원하여 이들이 이리 철도의 운영권을 취득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그 대가로 트위드는 거액의 이리(Erie) 철도 주식을 손에 넣음으로써 막대한 부를 쌓았다. 트위드의 영향력이 가장 피크였을 당시 그는 뉴욕시 부동산 부자 중 3위였고, 이리 철도 Tenth National Bank, 뉴욕 인쇄 회사의 이사였으며 메트로 폴리탄 호텔 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전직 소방관으로 출발해 이처럼 승승장구했던 트위드가 누렸던 ‘권력’의 원천은 민주당의 각종 직책과 선거 입후보자의 지명권을 가진 태머니 홀에 있었다. 폴리티컬 머신의 핵심은 대도시 유권자들을 조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선거 장악력이다. 트위드의 탁월한 능력은 바로 충성 유권자를 만드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누구도 부정할수 없었던 트위드의 유권자 장악,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트위드는 사실 직업 창출과 소득 분배를 핵심으로 하는 <창조경제>의 달인이었다. 가령 트위드는 건축이나 도시설비등의  뉴욕시가 수주하는 각종 사업 계약에 관여를 했다. 업자에게서는 뇌물을 받고 공사를 따게 해주고, 또 공사 액수를 천문학적으로 부풀리도록 돕는 한편, 불필요한 사업을 만들어서 예산을 횡령하거나 부실 공사를 눈감아 주면서 뇌물을 착복했다. 때로는 사업을 수주하게 하는 댓가로 사업체의 이권을 나눠가지기도 했다. 심지어 지출하지 않은 사업비도 가짜 전표를 통해 태머니의 배를 채웠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유권자들 (주로 신규 이민자와 빈민들)에게 ‘일자리’라는 명목으로 허드렛일을 만들어 환심을 사고, 공공연하게 유권자들의 표를 샀다. 

그들에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결국 득표력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얻은 득표력은 다시 트위드가 마음껏 전횡을 저지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또한 트위드가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 쌓았던 재산은 태머니 홀 내의 측근을 관리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본이 되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은 항상 청탁자로 넘쳐났다고 한다. 트위드를 통하면 무엇인가 이루어졌다. 물론 트위드는 그 모든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단단히 챙겼겠으나. 뿐만 아니다. 훗날 그의 횡령이 드러나도 뒷탈이 없도록 공무원과 경찰들에게 그리고 기자들에게 뇌물을 썼다. 그리하여 트위드의 수 많은 스캔들은 가장 하층민에서부터 사업가들과 정치인들까지 수 많은 사람이 ‘부패와 범죄의 고리’에 연결된 ‘트위드 링’이 되었다. 

권력이 커질 수록 트위드는 대담해지고 뻔뻔해졌다. 트위드와 그의 측근들이 신나게 해먹는동안 뉴욕시의 재정은 파탄이 났다. (1868년 3천 6백만 달러였던 뉴욕의 채무는 1870년 1억달러가 늘어난 1억 3천 6백만 달러가 되었다.) 

결국 납세자들의 혈세로 만들어진 뉴욕시 재정을 제 금고 불리기 위해 아낌없이 착복했던 트위드의 사기와 전횡이 1871년 뉴욕시 법원 리모델링 공사에서 트위드 일당이 저지른 횡령이 뉴욕타임즈 지면에 보도되면서 서서히 트위드링의 실체가 대중에게 알려졌다. (애초에 트위드의 ‘범죄’에 가담했으나 자신에게 돌아온 몫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데 대한 불만을 가졌던 누군가가 제보했다고 한다.) 한편 뉴욕 하퍼스 위클리에 거의 매일 폭로된 토머스 내스트 (Thomas Nast)의 만평도 트위드 링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언론의 비판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면서 트위드의 일당은 또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트위드는 재산을 가족이름으로 이전했고, 또한 뉴욕타임즈와 만평가 내스트에게 사건을 다루지 않는 대가로 다시 거액의 뇌물을 제안했다. (물론 언론이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백만불의 보석으로 잠시 풀려났던 트위드는 재판에 회부되었고, 결국 현재 가치로 25만불 가량의 벌금과 함께 12년 형에 처해졌는데, 그가 저지른 부패-범죄에 비해서는 새털같은 형량이었겠으나 이나마도 나중에 1년으로 감형이 되었다. 그러나 1873년 트위드는 또 다른 사기,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혔다. 이 파란만장한 사내는 1875년 탈옥을 감행, 쿠바를 거쳐 스페인으로 달아났다. 결국 1876년 스페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지만. 다시 감옥으로 되돌려진 트위드는 1878년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부정부패의 화신’으로 이름이 남게 되었다. 부패는 부패를 먹고 자란다는 교훈만 남긴채.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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