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77
보스톤코리아  2015-04-18, 16:45:24 
1961년의 5.16 군사 혁명, 주체세력들은 그들이 일으킨 군사정변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정권탈취에 성공했기에 그들의 견지(Perspective)에서는 당연히 혁명이다.112)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사태는 단지 ‘군사정변’으로 기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나마 성공한 구데타이기에 정권을 잡고 권력을 누렸지, 실패하였다면 내란죄로 ‘형장의 이슬’로 살아졌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 5.16으로 인하여 태권도계에도 큰 회오리 바람이 몰아쳤다. 이른바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군대 태권도는 전쟁 후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체력강화와 정신무장 등으로 수련되다가 정치적인 힘까지 받으면서 더욱 강성해졌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당시까지만 하여도 무도로 간주되었던 태권도는 경기 중심의 대회는 없었다. 그런데 5.16 후에 군사재건최고회의는 모든 사회 단체는 재등록을 할 것을 포고함과 함께 유사단체 통폐합을 실시하면서 태권도는 대한체육회 산하로 들어가도록 했기에 태권도협회 역시 가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포고령 제6호) 

당시에는 초창기 관장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한공수도회’와 무덕관 중심의 ‘대한수박도회’ 그리고 최홍희가 작명한 명칭인 태권도의 ‘대한태권도회’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사혁명 주체가 발표한 포고령에 의해 무도계가 통폐합을 해야 했기에 그해 7월 각 관의 대표들이 모여 통합회의를 수 차례 했다. 하지만 서로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로 통합의 길은 멀기만 했다. 모임은 또 9월19일에도 재개되었다. 논쟁과 설전을 거듭한 끝에 반대 없이(찬성 4, 기권 2) ‘대한태수도협회’로 결정하였다. 처음에는 당시 무도계를 대표하는 초창기 관장들과 파생된 관의 관장들이 모두 참석했었지만 회의가 거듭되면서 서로의 반목은 깊어졌으며 협회의 명칭을 결정하는 날은 6명만이 참석했다. 그리고 당시의 참석자들은 모두 30대 초중반의 사회적으로 경륜과 힘이 없었다. 그래서 회장자리는 비워두고 부회장으로 이종우(지도관)와 엄운규(청도관)를 선출하고 협회의 위상제고와 대내외적으로 효율적인 활동을 위하여 ‘힘’있는 회장을 영입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했다. 

장성출신인 최홍희가 당시 상황에서 보면 적임자가 될 수도 이었지만 그는 5대문파의 대다수 관장들로 부터 심한 견제를 받고 있었고, 또한 곧 말레이시아 대사로 부임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제외되었다. 그래서 당시 군사혁명위원회 감찰위원장인 채명신(당시 준장)을 영입하기로 하고 백준기(청도관, 당시 대위)를 내세워 채명신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당시 대한체육회장은 군사재건최고회의 부위원장인 이주일 준장이었다.
112) 고려를 없애고 이성계를 옹립하여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 배극렴, 조준, 남은, 이지란, 이방원 등의 주체세력들은 그들이 한 군사정변(이성계가 모든 군권을 잡고 있었지만 군사들을 직접 동원하지는 않았던 무혈 정변)을 혁명이라 불었고 역사 역시 이것을 ‘역성혁명’이라고 하며, 당시의 부패한 고려는 망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신(신진사대부)들의 새로운 ‘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 정당하다고 합리화를 했다. 하지만 ‘두문불출’이라는 말까지 우리들에게 남기고 두문동에서 끝까지 나오질 않고 타죽은 고려의 충절한 선비들에게는 정도전 일파는 단지 역적일 뿐이다. 그러나 성공한 정변이기에 승자에게 의하여 쓰여진 역사는 두문동의 ‘충절한 선비들의 정신’을 기리기 보다는 조선이 하늘의 뜻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용비어천가’를 더 귀중한 문화재(보물 제1463호 – 2006년4월28일 지정)로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학적인 용어 정립에서는 나라를 새로 세운 정란은 ‘혁명’이고 정권을 탈취한 정란은 ‘정변’이다. 고로 5.16은 군인들이 자행한 일이기에 그냥 ‘군사 정변’이다. 일례로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옥좌에 앉기 위한 군사행위는 혁명이 아니고 역사는 정란이라 부르며, 계유년에 일어났기에 ‘계유정란’이라고 부른다.(정란의 주체세력들은 역심을 품은 민신 일파를 몰아내고 정국을 수습하였다고 하며 이 사건을 ‘민신의 난’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망하는 고려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비운의 삶을 살았겠지만, 저무는 고려 왕실의 가장 어른으로서 본의 아니게(정변 주체세력의 강압에) 자신의 손(교서)으로 창왕, 우왕, 공양왕 등 세명의 왕을 폐위 시켜야만 했던 비운의 왕비가 있다. 정비定妃 안씨安氏, 그는 흔히 왕대비 안씨로 불린다. 공민왕의 제4비로 입궁하였다가 아버지 안극인이 노국공주(공민왕의 비)의 영전影殿 공사를 중단할 것을 건의했다가 파직되는 관계로 왕비는 출궁되었다가 나중에 입궁하였다. 또한 정비 안씨는 공민왕이 성적으로 광란의 시기를 보내면서 자신을 지키는 자제위 병사들에게 모든 왕비들과 성관계를 강요할 때 그녀는 단호하게 거부하였다(당시 혜비 이씨, 신비 염씨와 함께 끝까지 거부하였고, 익비 한씨는 공민왕이 칼로 위협하여 홍륜, 한안 등과 관계를 하였고, 익비와 관계를 가지라는 왕명을 거역한 윤가관은 폐서인이 되기도 하였다. 계속되는 관계로 익비는 홍륜의 아이를 임신하였고 최만생이 공민왕에게 이 사실을 고하니 왕은 기뻐하며 홍륜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에 최만생과 홍륜이 공민왕을 시해하였다. 익비가 낳은 딸아이는 대신들의 건의로 우왕이 명하여 1376년에 살해되었다). 조선왕조 개국 후 그는 의화궁주로 강봉되었고, 술로 한恨 많은 세월을 보내다가 1428년(세종10년), 고려가 망하고도 30년을 더 살고 죽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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