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축제, 가을 운동회
보스톤코리아  2014-11-05, 11:22:54 
2014-10-17

축제, 가을 운동회

  보스톤 가을답지 않게 날이 짖궂었다. 바삭바삭하던 낙엽이 모두 젖었다. 가을운동회날은 청명해야  즐겁다. 하나마나한 소리인데, 비가 오면 운동회는 망친다. 누가 푸른 하늘을 보여줄 겐가.

  가을운동회. 가슴 설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가을 운동회를 시골도 도회지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서 맞았다. 학생수가 많지 않으니, 학교 운동장에서 넉넉히 운동회를 치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찬합에 김밥과 찬을 담아왔다. 뜨뜨미지근한 칠성사이다도 있었다.

아이들은 오랫만에 맛보는 별식에 운동회를 기다렸다. 게다가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는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나섰다. 모처럼 모일 수 있는 기회였으니 동네 어르신들 빠질 수 없으셨던 거다. 당시엔 뭐 그리 대단히 볼거리와 놀거리가 있었겠는가. 단체관광이 있었겠나. 그저 동네에 결혼식이나 초상이 났다면 한번씩 모였을까. 너른 마당에 차일을 치고 잔치국수에 떡과 막걸리가 돌았을테니 말이다. 애어른 할것 없이 모두 모였다. 가을 운동회는 또 다른 동네 축제였던 거다. 

  소설가 이청준의 축제.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안성기를 주연으로 삼았다. 어머니 장례를 치루면서 가족간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산자와 죽은자가 어울려 먹고 마시고, 마음에 담았던 걸 털어놓았다. 울고, 웃고 떠들고 왁자지껄 소리내어 전송하는 거다. 소설과 영화에서 장례의 절차는 대화창구이고, 떠나고 보내는 시공간이었다. 산자와 죽은자가 화해하고, 산자와 산자가 어울리는 시간이었던 거다. 오히려 축제였다. 난 그렇게 읽었고 그렇게 봤다. 가을운동회와 장례는 다르지 않다. 온동네가 초대받고, 온동네가 떠들썩한 축제였던 거다.  참 떠나가는 분을 부르는걸 초혼招魂이라 던가.

  운동회에선 왜 청군과 백군인가. 청군에 홍군이든지 아니면 흑군과 백군이든지 이래야 맞는것 아닌가. 그리고 왠 만국기가 항상 펄럭였는지. 이북 인공기는 없었을 테고, 일장기가 있었던가. 그건 기억할수 없다. 기차표 운동화를 신고 뛰었을 게다. 말표였던가. 나이키는 아니었다. 

서울로 돈 벌러 간 엄마 대신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갔던 언니는
시민회관 창틀에 매달려 눈물을 떨구던 내게가을 운동회 날 꼭 오마고 약속했지만 단풍이 흐드러지고 청군 백군 깃발이 휘날려도
끝내, 다녀가지 못하고
인편에 보내준 기차표 운동화만/먼지를 뒤집어쓴 채 토닥토닥
집으로 돌아온 가을 운동회날
(안현미, 기차표 운동화 중에서)

  봄에는 소풍이고, 가을에는 운동회였다. 봄 소풍날에는 비가 자주 왔는데, 가을 운동회는 항상 날이 청명했지 싶다. 우리학교만 그랬나. 학년이 높은 애들이 뒷담화로 말했다. ‘학교 소사 아저씨가 학교우물에서 발견한 뱀을 죽였다. 그래서 봄 소풍날이면 비가 온다.’ 승천해서 용이 되어야 하는 뱀을 죽였기 때문에 앙갚음 하는 거라나.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는 걸 보고 놀랐단다. 외국인이 보기에 어색했던 모양이다. 이걸 문화의 다름이라 봐야 하지 않겠나. 멀리서 온 문상객들 더운 국밥 한 그릇이라도 먹여야 한다. 빈속으로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쓴 소주에 국밥 한 그릇 대접하는 건 아름다운 풍습이다. 게다가 떡이라도 몇 조각 싸서 보내야 한다. 집에서 떡을 눈빠지게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사도행전 2:46)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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