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72회
보스톤코리아  2012-11-12, 15:33:12 
자유라는 단어, 참으로 편안하고 온화하게 들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깨가 무거워지는 단어이다. 누구나 그 자유를 외치고 원하지만, 진정 그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히 한 가정의 주부라는 이름표를 달고 앉아 있는 자리는 더욱이 그 자유를 갈망하지만, 늘 현실 밖의 남의 일처럼 스쳐버리고 만다.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시부모의 며느리 자리에 있는 한 그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쉽지 않다. 그 어떤 자유에도 선택이 있고 그 선택에 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는 충분히 누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이것은 물이다》중에서 - 그렇다, 나 자신의 삶을 가만히 뒤돌아 보면 늘 무엇인가 크고 눈에 띄는 것에 초점을 두고 나 자신의 시간을 하례할 때가 많았다. 내 삶에서 무엇인가 이루었다는 자신감 내지는 성취감에 일상의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눈길 주는 시간이 아까울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이 있었다, 내게도. 지금은 훌쩍 커버린 세 아이가 올망졸망 연년생으로 서너 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자상하진 않지만, 늘 말없이 든든한 남편으로 따뜻한 아빠로 한 가정의 책임감이 특별히 강한 가장이 있었다.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세 아이를 키우며 마음속의 뜨거운 불덩이(예술쟁이)로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 누구도 채울 수 없는 내 속의 깊은 빈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그 알 수 없는 정체는 속박이라는 다른 단어로 나를 찾아오곤 했었다. 그 속박이라는 단어는 자유라는 단어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했었다.

올망졸망한 세 아이로 인해 내가 묶여있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속박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저 높은 하늘을 날고 싶은데 날 수 없다고, 저 멀리 날고 싶은데 날 수 없다고 그렇게 나 자신을 원망하며 살던 때가 있었다. 그 원망은 고스란히 남편에게 화살이 던져지게 되고 괜스레 생활의 짜증과 불만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나 자신이 나를 믿어주지 않고 자꾸 구석으로 몰고 가니 삶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남편이나 곁의 가족들은 미국 생활에서 복에 겨워, 편안함에 겨워 저런다고 내 속은 모르고 야단을 하니 그때부터는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혼자만의 지독한 앓이는 남편과도 그 외의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의 지병이라는 진단을 스스로 내렸던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가슴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인가 물건으로 사들이는 버릇이 생겼고 마음으로 자제하기 어려운 때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사들인 물건으로 무엇인가 채워질 줄 알았는데 그것은 더욱이 아니었음을 나중에야 깨닫기 시작했다. 세 아이가 유아원, 유치원을 들어가게 되면서 무엇인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쁜 버릇은 버릇인지라 애를 써도 잘라내기 어려운 고질병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책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 내가 세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과 한 남자의 아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내 눈앞에 처해 있는 현실과 실제로 증명되는 사실 앞에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묻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이 가슴 속을 휘돌기 시작했다. 세 아이를 키우며 내 빈속을 채우기 위해 밤새 그림을 그리거나 붓글씨를 쓰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속의 비었던 공간에 실오라기 같은 실빛이 따스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일을 시작하며 가족의 고마움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세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밖의 활동을 시작했다. 남편의 말 없는 도움과 후원도 고마웠다. 이렇게 고마움이 싹트기 시작하니 모두가 감사로 변해가는 것이다. 특별히 달라진 환경은 아니지만, 내 마음이 변했던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에서 '특별한 행복'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를 묶어 날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세 아이와 남편이 고마웠으며 그 묶인 자리가 있어 내가 더 높이 더 멀리 날다 돌아올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곁의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그 누구보다도 더 높이 날고 더 멀리 날며 진정한 자유를 맘껏 누리며 살고 있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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