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관타나모로 가는 길 (1) 그런데 왜 관타나모 수용소 “적대국” 쿠바 한복판에 있지? |
보스톤코리아 2011-05-16, 15:11:57 |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이 CIA 작전 도중 사살되었다는 뉴스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했고, 각국 수장들이 축하를 건넸다고 한다. 미국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는 소식도 보도되었다. 심지어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던 오바마의 재선에도 득이 될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찮다.“이제 그의 리더십을 확실히 확인했다”면서. 그러나 전시 교전 중 벌어진 일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되고 백악관에 생중계된 작전이었다는 대목에서, 정의란 대체 무엇인가 마음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뉴스를 읽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10년 가까이 꼭꼭 숨어있던 빈 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데에 결정적인 단서가 관타나모 수감자로부터 나왔다는 대목이다. “비공개 문서 폭로전문 인터넷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관타나모 수용소 관련 미군 비밀 문서들때문에 발칵 뒤집혔다더라는 지난 4월의 뉴스는 말하자면 복선이었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즈 등의 언론들이 위키리크스로부터 입수해 보도한 폭로 문건은 관타나모 수감자들에 대한 미국 국방부의 세세한 조사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침해와 고문의 폐해 등을 문제로 비판받아온 관타나모 폐쇄를 공약으로 내건 오바마 정권이지만, 여전히 그곳에서는 물고문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여기 담겨있다. 또 어떤 보도들에 따르면 관타나모에 수용된 포로들에 대한 미국 당국의 판단이 오류 투성이로, “중대한” 테러리스트가 석방되었거나 무고한 사람들이 수감된 경우가 다수 발견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무고한 사람들이 수감되는” 문제는 단지 “오류”의 문제일까? 또한 미국은 왜 자국에 적대적인 행위를 했(다고 간주되어지)던 테러리스트들을 관타나모에 수감할까? 사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건에 관한 뉴스를 무신경하게 읽어버리면 미군 당국의 “허술한 테러리스트 관리”가 문제인것처럼 읽힐 수도 있겠다. 그런데 관타나모 파일의 폭발성은 사실 다른 데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빈번하게 “테러리스트 수감시설”에 수용되는 현실 뒤편에는 관타나모 수용시설은 미국의 안보에 대한 위험의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의 가치로 인해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가령, “여러차례 심한 물고문을 받은 모하메드는 결국 미 중앙정보국에 빈 라덴의 측근 연락책의 이름을 털어놨고, 또다른 수감자 아부 파라즈 알-리비도 물고문에 시달리다 빈 라덴의 은신처를 추적할 수 있는 핵심 정보를 제공( YTN, 2011월 4일)”했다. 중국이나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충고를 아끼지 않는 미국이다. 게다가 미국과 미국령에서는 고문을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타나모 테러리스트 구금시설에서 지금껏 벌어진 인권 유린과 고문은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관타나모는 사실 쿠바의 영토에 있지, 미국땅이 아닌” 미국의 치외법권이라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다음은 역사적 질문이다. 그 관타나모는 어떻게 미국과 그냥 관계도 아니고 적대적 관계에 있는 쿠바 영토에 있을까? 이 질문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 (Sicko)의 한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한 번쯤 느꼈음직한 의아함이기도 하다. 9.11 테러 현장에서 헌신적인 구조활동을 펼쳤으나 그로 인한 각종 후유증에 대한 치료는 (민간 의료보험체계에 의해) 거부당한 9.11 영웅들이 사회주의 국가이자 미국의 적성국인 쿠바에서 거의 공짜로 치료를 받게 되는 나름 뭉클한 장면, 그에 앞서 이들이 찾아갔던 곳이 바로 관타나모. 그렇다. 관타나모는 미국이 쿠바 영토 속에 알박기해둔 땅이었다. 약 한 세기 전에.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쿠바를 보호하기 위해, 또한 쿠바에 있는 미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스페인-쿠바 문제에 개입하면서 시작된 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로 쿠바는 독립을 얻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은 보호국 (Protectorate)이라는 명분으로 쿠바의 내정과 주요 산업에 깊숙히 간섭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쿠바를 식민지로 삼았던 미국에 대한 쿠바인들의 적개심도 누적이 될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1903년, 미국은 천연 요새였던 관타나모에 대해 매년 금화 2천개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영구 임대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공산주의자인 카스트로 집권 이후 쿠바는 관타나모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여전히 임대료를 지급하고, 쿠바는 이를 거부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지난 반세기 동안 있어왔던 곳이 바로 관타나모였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 테러리스트가 드디어 사살되었다고 마치 볼데모르트가 영원히 사라진 듯 좋아하고 있을때 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애초에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어서는 안되었다는, 핵심 테러리스트가 제거된다고 테러가 종식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찌보면 미국에 대해 이전보다 더 큰 적개심을 품고 보복테러를 시도하는 숱한 제2, 제3의 빈 라덴이 생겨날 가능성만 더 커졌을지 모를 일이다. 관타나모가 상기시키는 미국-쿠바 관계의 역사를 기억한다면, 미국의 중동 정책도 되짚어봐야할 때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이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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