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30)
보스톤코리아  2024-05-27, 12:37:58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미실의 손녀 영모令毛는 김유신과 결혼하였다. 그 영모가 삼국유사에 부고訃告와 장지葬地로만 등장하는 재매부인財買夫人과 동일인임이 틀림없다. 그들은 김유신이 15세 풍월주로 오른 해인 임신년(612년)에 김유신의 외조모 만호태후의 명에 의하여 결혼하였다. 당시 김유신의 나이 17세였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환갑의 나이에 맞은 지소부인(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의 동생 문희가 낳은 딸)만 등장한다. 반면에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재매부인이 죽자 청연靑淵의 상곡上谷에 묻고 재매곡財買谷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권1, 기이)에는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 영모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서 현존하고 있다. 김유신이 살았던 경주시 교동校洞 집터, 집은 없어졌지만 김유신 가족이 마시고 살았던 우물, 그 재매정財買井이라 불리는 우물이 사적246호로 지정되어 현존하고 있다(1976년 지정). 재매정에 관한 전설같은 사실史實 한 토막을 보면 다음과 같다.
<644년(제27대 선덕여왕 13년), 김유신은 소판蘇判(3등급)으로 그 해 9월 상장군이 되어 백제의 성열성省熱城(경상남도 의령?), 동화성同化城(경상북도 구미) 등 7개의 성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645년 정월 귀경하였으나, 왕을 배알하기도 전에 백제의 대군이 매포리성을 침공한다는 급보가 전해지자, 왕은 또 김유신을 상장군으로 삼아 방어하라고 명하였다. 김유신은 가족도 만나보지 못한 채 출정하여 2천 여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동년 3월 왕의 귀환 명령을 받고 돌아왔다. 거의 집앞에 도달할 무렵, 또 백제 군사가 국경에 진을 치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지자, 왕은 김유신에게 또 출정하라고 명하였다. 그래서 김유신은 처자도 보지 못한 채 말머리를 서쪽으로 돌려야만 했다. 
이 때에 가족과 종자들 모두 문밖에서 김유신을 기다렸다. 그런데 김유신은 대문 앞을 지나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가다가 50보쯤 되는 곳에서 말을 멈추고, 종자에게 집에가서 물을 떠오라고 명하였다. “우리 집 물맛이 아직도 옛날 그대로구나!” 라고 하고는 그냥 길을 떠나니, 이를 보는 모든 군사들이 “대장군도 이와 같은데, 우리들이야 어찌 골육의 가족들과 이별함을 한탄하리요.” 라고 하며 전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물론 이때 김유신을 기다린 가족 중에는 영모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591년, 미실의 장남 하종은 풍월주의 위를 부제인 보리에게 물려주었다. 계사년(573년)에 태어난 보리는 하종보다 9살이나 아래였고, 둘은 인통姻統도 서로 달랐지만 생각과 감정이 투합하여 형제보다도 더 가까웠다. 사실 둘의 관계는 내외종간이다. 보리의 부모는 이화랑과 숙명공주이다. 하종의 부모는 세종과 미실이다. 숙명과 세종 남매의 부모는 이사부와 지소태후이니 하종과 보리는 내외종간이다. 즉 그들은 지소태후의 피를 함께 나누고 있었기에 같은 배에서 출생한 것과 같이 많이 닮아있었다. 
그들의 인통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하종의 어머니 미실은 어머니가 묘도(진흥왕의 왕후 사도의 언니)이며, 묘도가 옥진의 딸이니 대원신통이었다. 그리고 보리는 어머니가 숙명으로 지소태후의 딸이니 그는 진골신통이었다. 4세 풍월주를 역임한 이화랑은 피부가 ‘옥과 같이 부드럽고, 눈은 미소 짓는 꽃과 같고, 음률과 문장을 잘해서’ 지소태후의 명을 받고 궁궐에 들어가 공주(황화, 숙명, 송화)들을 가르쳤다. 그런 와중에 이화랑과 숙명은 사통을 하였다. 그런데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왕후 사도를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의 딸 숙명을 왕후로 봉하여 진골정통의 인맥姻脈을 이으려고 하였다. 이부동복관계인 진흥왕과 숙명은 서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태후의 명을 따랐다. 그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 태자로 봉했는데 그가 정숙태자이다. 정숙태자는 일찍 죽었고, 이어서 사도왕후의 장남 동륜이 태자가 되었다. 또한 지소태후는 이화랑를 총애하여 딸 만호를 낳았다. 만호의 딸 만룡이 보리의 부인이 되어 김예원을 낳았다. 김예원이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조부이다. 한편 지소태후의 정인으로 궁에서 지내던 이화랑은 진흥왕의 사랑를 잃은 숙명과 눈이 맞아 야밤에 월담하여 궁궐을 빠져나와 멀리가서 함께 살았다. 지소는 정인 이화랑을 졸지에 딸에게 빼앗겼지만, 후일 그 딸을 용서하여 궁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게 하였다. 이화랑과 숙명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원광과 보리이다. 원광은 대승불교의 진호국가사상鎭護國家思想을 화랑도(원광은 귀산과 추항에게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윤리강령을 가르쳐 당시 화랑도/또는 청소년들이 지켜야 할 생활의 윤리를 제시하는 세속오계를 제정하여 주었다) 및 근왕사상勤王思想(왕과 왕실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다)과 연결시켜 국가의 이념으로 정립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화랑의 차남 보리는 예원의 아버지이며, 김대문의 증조부이다.
이화랑과 지소태후가 낳은 딸 만호, 만호는 동륜태자의 부인이 되기 전에 정숙태자와 사통하여 만룡을 낳았다. 만룡이 보리의 부인이 되어 20세 풍월주 김예원을 낳았다. 만호는 동륜태자와 함께 아들 셋을 낳았다. 장남 김백정이 579년 제26대 진평왕이 되었고, 차남이 김백반이며, 삼남이 김국반으로 제28대 진덕여왕의 아버지이다. 또한 만호는 동륜태자가 572년 죽은 후 숙흘종과 사통하여 만명을 낳았다. 만명이 김서현을 사랑하여 595년에 낳은 장남이 김유신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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