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 블랙 파워 살루트
보스톤코리아  2016-09-26, 12:08:11 
지난 8월 26일 전미 풋볼 리그 (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 그린베이 패커스의 경기가 캘리포니아의 산타 클라라 경기장에서 열렸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경기 시작에 앞서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양 팀의 선수들은 기립해서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단 한 사람,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주전 쿼터백 콜린 캐퍼닉은 기립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캐퍼닉은 이렇게 밝혔다.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의 국기를 향해 자부심을 표현하려고 일어서지 않겠다. 나에게 있어 이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며,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르고 시신을 거리에 내버려둔 채로 유급 휴가를 떠난다"고 말했다. 즉, 캐퍼닉의 '국민 의례' 기립 거부는 최근들어 잇따라 이슈가 된 경찰의 공권력에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한 저항이었다. 한편 캐퍼닉은 "이 나라에 (인종 문제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때까지, 국기를 향해 기립하지 않겠다"고도 이야기했다. 

다음날 브라이언 매커시 NFL 대변인이 밝혔다시피 풋볼 경기의 개막식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NFL 선수들이 기립하는 것은 '권장' 사항이지, '강제' 조항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행동을 거부하는 것은 튈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예>라고 이야기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광고 카피가 한창  유행할 때, 우스개소리로 '그런 사람이 바로 왕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캐퍼닉은 왕따됨을 감수하고서라도 미국 내의 인종차별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셈이다. 

캐퍼닉의 '돌발 시위'에 대한 논란이 일자, 다음날 캐퍼닉의 소속 구단인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측은 "국가에 경의를 표하는 의례에 참여할지 말지를 선택할 권리가 개개인에게 있다고 본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캐퍼닉을 지지했다. 하지만 캐퍼닉의 '비애국적인' 행위를 비난하는 소리도 적지 않았다. 

어쨌거나 캐퍼닉의 '시위'는 일종의 도미노 효과를 가져왔다. 지난 1일, 시애틀 시호크스의 코너백 제레미 레인 역시, 오클랜드 레이더스와의 경기 시작 전 국가가 연주 되는 동안 기립을 거부했다. 레인은 "캐퍼닉을 지지"한다면서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여겨질 때까지 이 의례에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마이애미 돌핀스와 시애틀 시호크스의 경기 시작 전, 마이애미 돌핀스의 흑인 선수 네 명 역시, 국가 연주 중 기립하는 대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같은 날 애로우헤드 스타디움에서는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코너백 선수인 마커스 피터스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검정색 장갑을 낀 오른 손 주먹을 들어 올린 채로 있었다. 그러자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다른 선수들은 서로의 팔을 붙잡고 인간띠를 만들어서 그의 행동에 연대를 표시했다. 그날 밤, 아리조나 카디널스와의 야간 경기를 치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마르텔루스 베넷과 데빈 매커티도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각각 검은색 장갑, 흰색 장갑을 낀 채로 주먹 쥔 손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캐퍼닉이 국민의례 기립 거부를 통해 시작한 NFL 흑인 선수들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1968년 멕시코 시티 올림픽의 한 역사적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 대회 남자 육상 200 경기의 시상식, 금메달과 동메달은 미국의 흑인선수인 토미 스미와 존 카를로스가 각각 차지했다. 메달을 수상하기 위해 시상대에 오른 이 두 선수는 곧 관중의 이목을 끈다. 목에는 검은 스카프를 두르고, 신발을 신지 않은 발에는 검은 양말을 신고 있었다. 이내 미국 국가가 연주되었다.두 선수는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를 바라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다. 검은 장갑을 끼고 주먹을 쥔 오른 손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숙인 채로 국가 연주가 끝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빈곤과 소외, 여전한 차별의 덫에 놓여 "이류 시민" 취급을 받고, 빈번한 경찰 폭력의 대상이 되던 흑인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해있었다. 이무렵 블랙 파워 운동 (Black Power Movement)이 발생했다. 블랙파워 운동의 주창자들은 기존의 온건한 노선의 민권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제 공민권이 아니라 인권을 주장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흑인들의 자결권과 완전고용,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요구했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는 슬로건이 암시하듯 백인 체제에 순응하기보다는 흑인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정서도 블랙 파워 운동의 자양분이었다. 

68년 멕시코 시티 올림픽의 스미스와 카를로스가 보여준 퍼포먼스의 맥락은 바로 블랙파워 운동이다. 신발을 신지 않은 검은 양말은 흑인의 빈곤을, 스카프는 자존감을, 그리고 검은 장갑을 끼고 주먹쥔 손은 블랙 파워를 상징하고 있다. 관중은 야유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흑인 인권 문제를 전 세계에 드러냈다.  

은메달 수상자로 시상대에 올랐던 또 다른 육상선수는 피터 노먼이라는 호주인이었다. 백호주의가 팽배했던 호주 역시 인종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라. 노먼은 스미스와 카를로스의 저항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들과 나란히 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 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배지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올랐다. 흑인도 미국인도 아니었던 노먼은 이 일로 인해 평생 불이익을 받게 되지만, 그의 용기 있는 연대는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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