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과 신라, 가야의 친연성 (5) : 활(弓) |
보스톤코리아 2014-12-29, 12:37:31 |
훈족이 로마군을 압도했던 이유가 여러가지 있었다. 첫째는 훈족의 말은 유럽 말에 비해 지구력이 월등했고 두 번째는 말을 다루는 능력에 차이가 있었고 세 번째는 훈족은 말 안장과 말 등자가 구비되어 있어 전투 중에 달리는 말에서도 두 발로 말등자를 딛고 서서 상체와 두 손을 다 사용할 수 있었다. 믿기지 않는 사실은 훈족과 100여년을 싸우면서도 로마군은 훈족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말안장과 말등자를 마련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이유만으로 적을 제압할 수 는 없었다. 전장에서 이기려면 적을 살상시키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활과 화살이 바로 그 대답이다. 로마 군사들도 훈족처럼 활과 화살이 있었다. 전장에서 활은 더 멀리, 더 강하게 쏠 수 있어야 하는데 로마군이 사용하던 장궁(長弓)은 훈족의 반곡궁이 가지고 있는 힘과 사정거리를 도저히 따라올 수 없었다.
활의 크기에 따라 2m 이상이 되는 장궁(長弓)과 1.3m 이하의 단궁(短弓)으로 나뉜다. 로마를 비롯한 유럽, 일본, 동남아 지역에서는 장궁을 사용했고, 한국, 중국과 흉노, 훈, 몽고 등 유목 민족들은 단궁을 사용하였다. 활은 두 손을 사용하여야 쏠 수 있는 무기라서 로마의 기병들은 달리는 말에서 활을 쏠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 활의 크기가 너무 커서 기병들이 가지고 다니기가 어려웠다. 흉노, 훈, 한반도에서는 활의 크기가 적어 활을 안장에 걸치고 칼이나 창을 지참할 수 있었고 달리는 말에서도 제대로 조준해서 활을 쏠 수 있었다. 흉노, 훈과 우리 한족은 동일한 모양의 활을 사용하고 있었던 친연성이 있었다. 활을 만든 재료가 나무면 목궁(木弓), 대나무면 죽궁(竹弓), 쇠로 만들면 철궁, 물소 뿔을 가미해서 만들면 특별하게 각궁(角弓)이라 하였는데 사정거리에서 각궁의 성능이 단연 으뜸이었다.
일찍히 중국 사람들이 한민족들이 사용하던 활의 위력이 월등해서 따로 붙인 이름이었다. 맥궁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 5년이 걸리고, 이 활을 익히는데 10년에 걸렸다고 한다. 복합궁을 만드는 방법은 활 앞면에 물소 뿔 같은 뿔판을 대고 활 뒷면에는 동물의 힘줄을 붙여서 만들었는데 시위를 당기면 만곡 형태로 활이 휘었다가 시위를 놓으면 반대 방향으로 만곡이 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반곡궁, 또는 만곡궁으로 불렀다. 시위를 놓았을 때 만곡이 생기는 활은 반탄력이 커서 사정거리가 단일궁에 비해 월등하게 길게 마련이다. 로마군이 사용하던 장궁(長弓)은 시위를 놓으면 활 모양이 원래의 반달 모양으로 환원되고 만곡이 생기지 않는다. 즉 사정거리가 짧게 마련인 것이다.올림픽 경기 때 사용하는 양궁도 로마의 활처럼 사정거리가 짧기 때문에 표적을 멀리 설치할 수 없는 것이다. 복합궁을 만드는 재료는 물소 뿔(水牛角), 소 힘줄, 대나무, 뽕나무, 벗나무 껍질, 민어부레풀(아교) 등 6가지 였는데 물소 뿔은 한반도나 북방 유목민족들이 사는 곳에서는 없는 물건이라서 베트남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삼국 초기에 고구려와 백제는 물소 뿔을 들여올 수 있었지만 신라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물소 뿔을 사용한 반곡궁은 반탄력을 증가시키는데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각궁(角弓)이라고도 불렀다.
로마 병사들의 주 무기는 창이었는데 사정거리가 길어야 30m였다. 그러니 훈족은 대치거리 200m에서 30m로 접근할 때까지 일방적으로 로마군을 공격할 수 있었다. 로마군이 적들의 정체를 파악도 못하고 있을때 훈족이 쏘아대는 화살이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듯 날아와 로마군의 갑옷을 종이 뚫듯 관통하였다.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이었다. 훈족의 화살촉은 삼각형 모양으로 쇠로 만들었는데 갑옷을 쉽게 관통시킬 수 있었다. 이런 화살을 보통 개인당 30개 정도 지니고 싸웠는데 그 정도 화살이면 한 번의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인들은 훈족의 공격을 폭풍우에 비유하였다. 저 멀리서 검은 구름이 일기 시작하면 곧 이어 천둥소리처럼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검은 구름은 흉노 기병이 질주하면서 일으킨 흙먼지고 천둥소리는 말발굽이 지면과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였다. 곧 이어 억수같이 쏟아지는 화살비를 일방적으로 맞아야만 했었다. 화살비를 간신히 피하고 목숨을 건졌을 때는 로마군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이어서 벌어지는 접근전에서조차 로마군은 불리함을 감수하여야만 하였다. 훈족의 검은 양날검이라 양쪽으로 다 사용할 수 있었지만 로마군은 찌르기만 할 수 있는 검이라서 그 위력에서 차이가 많았다. 훈족 병사 한 사람을 상대하려면 20명의 로마 병사들이 필요했다고 한다. 당시 로마의 기병들은 말안장이 없어서 말등에 가죽 한 장 깔아놓고 싸웠기 때문에 접전 중에 말에서 떨어져 죽는 경우가 많았고,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는 말 고삐를 꽉 쥐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나머지 한 손만 가지고 칼, 창을 휘둘러야만 했고 상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어려웠다고 한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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