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락 사건
보스톤코리아  2013-09-09, 12:31:26 
2013년 9월 4일, 우리집 꼬맹이가 1학년이 되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등교 첫 날의 설레임과 흥분 더하기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아이를 데려다 주었다. 아이들이 교실로 흩어지기 전에 모이는 운동장은 바로그 새 학기의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활기차게 들썩이고 있었다. 

1957년 9월 4일 아칸사스주 리틀락. 공립 학교의 새학기가 시작하는 그 날, 애석하게도 리틀락 소재 센트럴 하이스쿨을 에워싼 것은 새학기 특유의 활기찬 들썩임과 기분 좋은 긴장이 아니었다. 주지사 오벌 포버스 (Orval E. Faubus)가 소집한 주 방위군 (National Guard)이 무장한 채로 학교를 막아서고 있었으며, 흑백간 분리를 외치는 성난 백인 군중 400 여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군중들 틈새로 린치의 위협을 느끼며 학교로 들어어오려던 아홉 명의 흑인 학생들이 있었다. 

1954년 브라운 판결 
리틀락 사건은 1954년 브라운 판결 (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의 후폭풍이었다. 잘 알려져있는대로 브라운 판결은 얼 워렌 (Earl Warren) 대법원장이 이끄는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 중 하나로, 공교육에서의 인종 분리 (Racial Segregation in Public Education)가 위헌이라고 선언했던 미국 사법사상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로 기억된다. 브라운 판결의 발단은 캔자스주 토피카에 거주했던 린다 브라운이라는 어린 흑인 소녀가 피부색을 이유로 근처 초등학교 입학이 거부당한 사건이었다. 린다 브라운의 가족은 전미 유색인종 지위향상위원회 (NAACP,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의 도움을 받아 토피카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브라운 판결을 내놓은 얼 워렌은 해당 소송을 제기했던 브라운 사건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라도 교육에서의 분리 (segregation)는 흑인들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불평등할 수 밖에 없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19세기 말 철도와 같은 대중교통이 인종을 분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분리되었으되 평등”할 수 있으며, 수정헌법 14조의 미국 시민에 대한 법 아래서의 평등한 보호 요구를 위배하지 않는다고 판결함으로써 남부지역의 대중 교통, 공립학교 교육, 공공 시설 등에서의 인종간 분리 정책을 헌법적으로 정당화했던 플레시 대 퍼거슨 (Plessy v. Ferguson, 1896) 판결을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후 대법원은 “최대한 신중하게 (with all deliberate speed)” 공교육 시스템상에서의 인종 통합을 실시하라고 주문한다. 

리틀락의 위기 
1957년 9월 4일 센트럴 하이스쿨에서 등교를 시도하던 아홉 명의 흑인 학생들은 브라운 판결에 따라 그 학교에 진학할만한 “합법적인” 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에 반하여 무력을 동원하면서까지 이 학생들의 등교를 막아내려했던 주지사의 행위는 인종간 분리를 지지했던 과거 노예주 (남부) 백인들이 20세기 중반 인종 통합에 대해 지녔던 반감이 그만큼 뿌리 깊게 박혀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서 9월 24일,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주지사를 소환하는 한편 1000 명의 연방군을 리틀락으로 보내 주 방위군을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고, 그 다음 날 아홉 명의 흑인 학생들은 무장한 군인들의 경호하에 학교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센트럴 하이스쿨은 인종 통합 고등학교가 되었을까? 리틀락 시는 연방의 조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일 년간 공립학교 자체를 폐쇄해버렸고, 백인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인근 사립학교 등지로 보내버렸다. 법적인 변화와는 별개로 사람들은 그렇게 더디게만 바뀌었나보다. 

다시 뉴 짐크로우
1950년대의 흑인들이 저항했던 종류의 차별들, 즉 인종별로 분리된 공립학교라든가 공공 시설물, 투표권의 제한과 같은 것들이 더이상 현재형의 차별인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하지만 리틀락 위기 이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은 더이상의 인종 분리 (segregation)가 벌어지지 않고 있을까?  

최근의 짐머맨 판결 이후 나는 종종, 트레이븐 마틴이 후드티를 입고 걸어가는 있는 “백인 청소년”이었다해도 짐머맨은 “위협을 느껴, 정당하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라는 사실상 해결 나지 않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했었다. 적어도 흑인들이 범죄의 낙인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짐머맨이 느꼈던 “위협”은 많은 이들이 스테레오타입으로 느끼는 어떤 종류의 혐오 혹은 공포, 심리적 분리의 다른 이름 아닐까? 

지난 주 칼럼에서 언급했던 “뉴 짐크로우”로 잠깐 돌아가보자. 미국에는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뉴 짐크로우 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흑인에 대한 대량 체포-수감이 새로운 인종 분리 기제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내 교도소의 수감자 절반을 넘나드는 흑인 재소자들의 존재는 그들이 범죄에 더 빈번히 연루되어 있는 증거일 뿐이라고. 그런데 그 흑인 재소자들 상당수가 마리화나 같은 값싼 마약사범이라면! (마약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비싼 마약들은 합법적이고 의료의 이름하에 비범죄적이고 마리화나 같은 마약은 범죄적이라는 분류는 난감하다. 한편 미국의 재소자들은 투표할 권리가 없고, 몇 몇 주는 전과자들의 투표권을 불허하고 있다.) 뉴 짐크로우가 타당한 설명이라면, 21세기의 브라운 판결은 보이지 않는 편견과의 싸움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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