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밖 역사 읽기 (8) : 19세기 전반 사회 개혁 운동 (1815~1860)
보스톤코리아  2012-08-06, 14:03:20 
소피아의 <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칼럼이 “교과서 밖 역사 읽기”라는 여름방학 지면특강 시리즈로 나갑니다. 여름 방학 동안 중고생 자녀들의 독서지도를 고민하시는 부모님들과, 독서를 통한 분석적 독해 및 비판적 사고 훈련에 관심을 가지신 부모님들께 길잡이로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길게는 대략 1800년 무렵에서 1860년경까지 짧게는 1830년 무렵에서 1860년 경까지 “남북 전쟁 이전”의 시기는 문자 그대로 “전쟁 전 시기 Antebellum Period”라는 이름으로 불리곤한다. Antebellum Period라는 작명은 상당히 효과적이고도 경제적이다. 관세 문제, 연방 정부의 권한과 각 주의 자유, 국가의 경제 정책, 교통, 혹은 영토 확장과 더불어 노예제를 준주 영토 (territories)로 확장 할 것인지의 여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성장기는 대개 남북간의 갈등의 용광로였으니, 돌이켜보면 바로 그 시기가 남북 전쟁의 예고편이었을게다.
하지만 바로 그 Antebellum Period는 19세기 개혁운동 (Reform Movements)의 시기와 거의 정확히 포개지고 있다. 당시의 개혁운동에 대해 종종 Antebellum Reform Movement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바로 그 동시대성 때문이다. 그래도 당시 개혁운동의 동기와 외연을 적절히 담기에는 “전쟁 전”이라는 명찰은 어딘지 부족해 보인다.

20세기 초엽의 개혁 주의 (Progressivism)와 마찬가지로 19세기의 전반의 개혁 운동 역시 종교, 건강, 공교육, 절주,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어젠다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여기서 다양한 개혁 운동을 포괄할만한 공통의 이데올로기적 근거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당시의 개혁 운동의 흐름은 그 시대의 거울에 비추어 보자면 다소 급진적일 수도 있는 아이디어들로부터 탄생했고, 또한 실제로 미국 사회의 변화에 일조했다는 점만은 기억해두어야겠다.

Antebellum Era의 개혁 운동에 대한 이해를 위한 큰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먼저Ronald G. Walters의American Reformers, 1815-1860를 가장 먼저 추천한다. 이 책의 분량이 방대하지는 않지만 당시 문화와 사회에 대한 정보도 적절히 제공하고 있는데다가, 다양한 개혁 운동의 면면도 상당히 위트 있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혹은 남북간의 갈등과 같은 담론 속에는 배제되기 십상인 미국의 “중산층”이 어떻게 등장해 가는지, 혹은 개혁 운동의 흐름 속에 그들의 역할은 어떠했었는지, 특히 여성들이 개혁운동에 어떤 역할을 제공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개혁 운동의 신호탄은 사실은 “개혁”과는 거리가 좀 있어보이는 “종교”였다. 미국의 독립 혁명과 그 이후의 시기, 계몽적 이성 혹은 합리성은 사실상 종교의 자리를 대체해가고 있었다. 수정헌법 1조를 비롯 각 주 헌법의 ‘권리장전’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했다. 종교는 때로 ‘미신적 믿음’과 동의어로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고, 신은 세상을 창조했(을테)지만, 인간사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신의 섭리를 알고 싶으면 자연을 탐구하라는, 사실상 과학주의인 이신론 (Diesm)이 유행해가기도 했다. 이러한 반종교적인 이성주의 경향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등장했던 것이 바로 보다 뜨겁고 순수하고 감성적인 종교적 초심으로 복귀하자는 제 2차 종교 대각성 운동 (Second Great Awakening)이었다. 감리교, 침례교 등의 복음주의 부흥운동 혹은 몰몬교의 등장은 당시의 종교 대각성운동에 힘입었다.

그런데 1820년경부터 등장한 종교 대각성운동은 사실 기독교 내부의 지각변동을 훨씬 넘어서는 변화를 가져오게된다. 기독교로 개종하는 노예들이 증가하면서 노예 사회 내부에서는 “출애굽 (exodus)”의 메시지가, 양심적 백인 중산층 사이에서는 평등 의식이 노예 해방 운동 (abolitionism)에 영향을 끼쳤다.
노예 해방 운동은 19세기 개혁운동중에서도 가장 “antebellum”에 걸맞는 중요한 축이 되는데, Jesse Macy와 Linda Pendleton의 The Anti-Slavery Crusade: A Chronicle of the Gathering Storm of the 1800s 가 19세기 노예 해방 운동의 시대적 흐름을 꿰뚫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한편, 종교 대각성 운동의 종교적 성향은 19세기 개혁운동의 절주운동 (Temperance)에도 영향을 끼친다. 당시 미국인들의 음주량은 현재와 비교해 약 세 배 정도로 상당히 높았는데, 기독교 중산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알코올의 해악을 알리고 절주를 권장하는 캠페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종교 대각성 혹은 절주 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은 이 시기에 등장한 “현모 양처 숭배" (Cult of Domesticity)의 배경 철학을 이해하게 해준다. 19세기 전반부, 공적 공간의 남성과 사적공간의 여성의 자리는 날카롭게 구분되곤 했는데, 여성들에게는 공화국의 어머니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의 “죄악"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는 도덕적 보호자 (Moral Guardian)의 역할이 부여되곤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여성은 남성보다 더 순수하고, 더 도덕적이며 더 종교적"이라는 문화적 편견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은 19세기 중반의 여성주의 혹은 여성 참정권운동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중반 페미니즘에 대한 책으로는 Sally McMillen의 Seneca Falls and the Origins of the Women's Rights Movement (Pivotal Moments in American History)를 권한다.
19세기 중산층 여성들은 수용소 운동이나 노예 해방운동 등 여타의 개혁 운동에도 적극적인 개혁가로 등장한다. 왜 중앙정치에서 논쟁을 하는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들이 개혁의 선봉에 있었을까? 19세기 개혁운동을 사고할때, 반드시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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