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의 개혁과 죽은 시인의 사회
보스톤코리아  2010-11-15, 16:16:04 
편/집/국/에/서:

1989년 제작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한 선생님을 소개한다. 구구단에서부터 피타고라스 정리까지 달달 외우다 학력고사 또는 수능에 따른 성적순으로 대학을 골라가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이 영화의 ‘폴 키팅(로빈 윌리엄스 역)’ 선생은 로망이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미국을 향한 조기유학 붐에 이 영화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버몬트 소재 남자 사립학교 (프렙 스쿨) 웰튼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쓴 톰 슐만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전통, 명예, 규율, 우수” 가 교훈인 이 프렙스쿨은 명문대 진학율이 높은(75%) 학교.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 꿈 등과는 상관없이 부모가 바라며, 사회적 지위를 갖는 직업을 향해 공부에 열중한다. 영화 속 룸메이트인 닐과 토드는 각각 의사와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강한 바램에 짓눌려 산다.

학생들은 늘 이 같은 학교의 규율과 부모님의 압력 그리고 장래 선망의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에 열중한다. 한국이 그렇듯 이들의 평가는 오로지 성적이 기본이 된다. 모든 과목의 선생님들은 첫 수업부터 강행군하며 수많은 양의 과제를 부과한다.

같은 학교 졸업생인 폴 키팅 선생의 영어 첫 수업. 보스톤 불꽃놀이 연주곡으로 너무 익숙한 ‘1812년 서곡’을 휘파람으로 부르며 교실을 한 바퀴 돌고서는 나가버리는 키팅의 모습에 학생들은 어이없어 한다. 학생들을 교실 밖으로 끌어 낸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있으면 ‘미스터 키팅’이 아닌 월트 위트만의 시에 나오는 것처럼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복도에 진열된 그들의 선배 사진을 보게 하며 “카르페 디엠” (Seize the day, 현재를 즐기라)이라고 속삭인다. 현재를 즐기고 삶을 특별하게 가꾸라는 그의 메시지는 학생들에게 충격을 던진다. 수학적으로 시의 위대함을 측정할 수 있다는 책의 서문을 찢어버리라는 파격적인 그는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며 새로운 사고로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정해진 공부를 하고 성적을 내는 것만이 삶과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는 가슴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다.

위기에 빠진 워싱턴 DC의 공립학교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한국계 미셸리 교육감이 지난 10월 자진 사퇴했다. 2007년 리 교육감을 영입했던 시장 에이드리언 펜티(Fenty)가 지난 9월 선거에서 탈락한데 따른 것이다. 미셀리 교육감은 초기 성공적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향상시키면서 타임지에 표지로 선정되는 등 공립학교 개혁의 기수로 꼽혔다.

리 교육감은 "교사들의 존재 이유는 학생들의 성적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며 "가르치는 데 성의가 없거나 자질이 부족한 교사들은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7월에도 워싱턴 지역의 전체 교사 4000명 중에서 부적합으로 평가된 교사 241명과 교육 공무원 302명을 해고했다.

개혁의 깃발 아래 동료를 해고한 대가는 논란과 ‘미완성의 개혁’이었다. 워싱턴 DC 교원노조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그레이 시장은 지난 9월 민주당 경선에서 펜티 시장을 누르고 당선 됐으며 미셸 리 교육감은 펜티 시장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물러났다.

뉴스위크지는 미셸 리 교육감의 개혁이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그냥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의 성적에 근거해 교사를 평가하는 미셸 리의 개혁은 미 교육부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미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LA 타임즈는 지난 8월, 7년간 학생들의 영어와 수학 시험성적을 분석해 LA 학군 내 교사 6천명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이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마라몬테 초등학교 5학년 교사 리고베르도 루엘라스(39)는이 평가에서 “비효과적 교사”로 분류됐다.

마약, 폭력, 범죄가 판을 치는 빈민가 멕시코 및 남미 계 학생들이 대부분인 곳에서 루엘라스는 맨토역할을 하고 대학 진학의 꿈을 심어주었다. 학교가 끝나면 부진한 학생들을 불러 지도했고, 가정을 방문했다. 비치 발리볼 동아리도 만들어 학생들과 즐겼다 . 14년간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던 그가 비효율적인 교사 판정을 받고 난 뒤 싸늘한 죽음으로 발견됐다.

미셸 리 교육감의 개혁은 많은 곳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미셸 리 교육감의 교사 평가 시스템이 루엘라스 같은 교사를 ‘비효과적 ‘으로 평가해 쫓아내거나 자살케 해서는 안된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이 주 목표가 되는 순간 교사들은 생존을 위해 주입식 교육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학교는 성적을 높이는 학원이 아니다. 그런 학교는 한국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해고된 폴 키팅 선생이 짐을 싸 교실을 떠날 때다.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며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책상으로 올라가는 학생들의 모습에 영화를 보는 도중에 옆에 의자에라도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런 교사 밑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활짝 펼치고 꿈을 키우는 것, 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교육인 것을 미셸이 알면 좋겠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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