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旬) |
보스톤코리아 2009-04-27, 16:22:42 |
"(김정일의 폭정에서) 탈북한 사람들은 심한 고통 속에서 보다 나은 희망을 꽉 잡는다."-"탈북자 영화: Kimjongilia에 대한 하이킨(N.C.Heikin) 감독의 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서 2장 20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4월에 한국의 강원도에 새 별명이 붙여졌다. "동반자살(同伴自殺) 지역이란. 4월 23일, 양구의 웅징터널 인근에서 남녀 4명이 자동차 안에서 동반자살-한명 숨지고 세명 위독. 4월 22일, 홍천의 팬션 투숙소에서 남녀 5명 동반자살, 4월 17일 인제에서 남녀 3명 자동차 안에서 동반자살, 4월 15일 횡성의 팬션 투숙소에서 남녀 5명이 동반자살. 4월 8일 정선의 한 민박집에서 남녀 4명이 동반자살 등등. 강원도에 별명이 붙은 이유다. 보름 동안 21명이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니까. 산이 많고 인적이 드물고 물은 맑고 공기도 좋아서(?). 이렇게 은연중에 강원도가 동반 자살 지역으로 광고 돼서 자살자들이 강원도를 선호한단다. 한국 통계청에 의하면 2007년 자살 통계가 강원도가 10만명당 33명으로 전국에서 1등, 울산이 23.1명으로 2등, 3등이 서울 19.6명이란다. 한국 자살 예방 협회장 홍강의(서울대 병원 신경 정신과 교수)는 "가족 중에 '죽고 싶다'는 말을 하면 우울증이나 알코올의 존증, 기타 불안증이 있는 지를 진단 받아야 하지만, "자살 예방의 지름길은 가족들의 관심"이라고. 가족 사이의 무관심이 자살을 늘린단다. 가족끼리 차가운 관계, 한마디로 사랑이 없으면 죽음으로 연결된다. 혼자 죽기 힘드니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웹사이트를 통해서 찾아 동반 자살을 한다. 강원도의 자살 방법이 모두 연탄 개스를 쓴 것을 보면 모방심리, 유행심리를 따른 것이다. 가족간의 불화,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이 꺼지면 죽음으로 삶을 끝내는 유행(?)은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를 재검토하게 한다. 남한의 동반자살 유행에 반하여 북한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려는 투쟁이 눈물겹다. 4월 26일~5월 2일까지 북한 자유 주간(North Korea Freedom Week)으로 정하고 워싱턴에서는 상하양원을 비롯해서 미국무성, 워싱턴, 버지니아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촛불예배와 기도 모임을 중심으로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북한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북한 당국이 잔학하고 흉악한 짓을 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찢습니다. (It breaks my heart)" 오픈 도어즈(Open Doors) 미국 사장 묄러(Carl Moeller)의 말. 이 선교 조직은 북한 자유 연맹(North Korea Freedom Coalition)과 공동으로 북한 인권과 자유를 위한 기도 캠페인(Prayer Campaign)을 벌인다. 4월 27일엔 북한을 위한 세계 기도일 1주년을 기념하고 북한의 기독교인 등 인민학살에 관한 사진전을 워싱턴유니언철도역의 콜럼버스서클(Columbus Circle)에서 연다. 국무성의 민주 인권 노동국(DRL) 주관으로 북한 인권 민주화 촉진 확산을 위한 기금 모금 캠페인도 벌인다. 아주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일리아(Kimjongilia)" 영화 관람. 미국 의회영빈센터극장에서 공개되는 이 영화는 탈북자들의 실상을 중심으로 그들의 증언들을 엮은 북한인권과 탄압의 기록들이다. 중국의 탈북자 반송정책에 따라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체포 북한으로 돌려보내 처형되는 김정일 숭배 사교(cult)를 고발한 것.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로 상속된 이 사교(邪敎)를 통해 무참히 희생되는 북한 기독교의 실상이 공개된다. 김정일리아는 그의 46회 생일 때 베고니아(begonia : 추해당)를 "Kimjongilia: 김정일의꽃"으로 명명하고 이 꽃은 김정일의 지혜, 사랑, 정의와 평화를 상징한다고. 이 거짓된 김정일우상화가 탄압 받는 기독교인들에게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희망으로 심는다. 순(旬): 十日 십일 -열흘 순. 十日은 문자 그대로 십자가(十)의 날(日)이다. 부활절은 40일을 기다려서 온다 해서 사순절이었다. 부활 후 7주를 기다리면 오순절(五旬節: Pentcost)이다. 왜 旬이 따라다니나? 인간의 본질을 바꾸는 그림이 旬이어서다. 旬을 싸고 있는 보자기를 포(包:쌀포)라 한다. 뭣을 싸고 있나? 꼭 한글의 ㄹ 자와 비슷한 글자: 己: 身也 신야-몸기. 몸을 싸고 있다. 己의 밑에 획이 조금 위로 올라가면 : 止也 지야-그칠 이. 정지(stop) 중 지(guit)는 뜻. Stop and go(가지 말라. 가라)는 명령을 싸고 있다. 己에서 밑의 획이 아주 己의 윗부분을 치켜 올리면 巳: 蛇也 사야-뱀(snake) 사. 뱀은 사탄(Satan)의 상징이어서 사탄도 우리 몸에 들어 와 있다. 이 다섯 획의 글자 포(包)를 통해 창세기의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아담의 대화를 연상케 한다. "네 몸(己)을 위하여 동산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창세기 2: 16, 17. 여기까지는 하나님과 아담의 대화 "몸(己)을 위하여 먹으면 안돼( : 止也 지야- stop 신호를 말한다.) 빨간 신호에서 계속 달리면 충돌해서 사고나서 죽는다. 그렇다. "죽음이 걸려 있는 말씀(止)을 뱀(巳)이 "결코 죽이지 아니 하리라."(창세기 3:4). 여기에서 인간이 타락하므로 죽음이 종착역을 맞는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이 죽을 운명의 인간을 아담과 하와(Adam and Eve)가 선악과를 먹기 이전 상태, 하나님의 형상인 선(善)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다. "내(예수)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하나님)께로 올라갈 자 없느니라 : I(Jesus)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God) except through me: 요한복음 14:6"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신 것이 부활이다. 죽음을 박차고 다시 사셨으까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곧 나도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은 것이다. 어디에? 내 가슴에. 이 사실을 旬이란 글자가 대신 그린다. 包에서 旬이면 몸에서 己(①몸 신, ②그칠 이, ③뱀 사의 뜻을 지닌) 를 들어 내고 그 자리에 日(빛과 시간)을 심는 것.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the life.- 요한복음 8:12." 분명해진 것이 전기 불 밑에 24시간, 1년, 평생을 보낸다 해서 旬이 되는 것이 아니다.빛(light)과 날(day)의 근원(source)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 따르는 것과 직접 연결된다. 旬은. 해서 예수 말씀을 따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let your lightshim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praise your Father in heaven.-마태복음 5: 14,16."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빛의 정체가 예수님을 따라(following Jesus)야 하고 그 빛이 선행(good deeds)과 연결 돼 있으며 그 선행이 이웃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praising God)하는 것과 엮어 진다. 아담과 하와의 후예로서는 "선악과를 먹은 탓"으로 우리 몸에 악(惡)이 존재하므로 선(善)을 하고 싶어도 악이 간섭해서 안된다. 그래서 바울(Paul) 사도가 탄식한다. "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니라: For what I d is not the good I want to do: no, the evil I do not want to do. It is no longer I who do it, but it is sin living in me that does it : 로마서 7: 19, 20." 내가 하고 싶은 선을 방해하는 죄(罪)가 "아담과 하와" 때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한 죄다. 내 몸 속에 "stop eating or die: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는 뜻의 : 止也-그칠 이를 싸(包)고 있어서다. 하여 우리 몸을 죽게 하는 包에서 旬으로 빛(日)을 갈아 끼우는 작업이 부활의 코스. 부활절을 맞이했었으면 Post-Resurrection(후부활 後復活)이 따라야 한다. 우리 몸 속에 이기(利己: self-Love)를 내세우는 사탄(Satan)의 욕심을 들어 내고 예수님을 따라 많은 이웃들이 하나님께 찬양의 영광을 돌리는 빛(日)으로 갈아 끼우는 旬. 이 예수님의 빛이 내 몸 속에 들어 오면?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에 같이 못 박혀 죽는다. 내 몸속에서 사탄이 부추기는 욕심을 들어낸 자리에 그리스도의 빛, 곧 그리스도가 사신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the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 갈라디서 2: 20." 여기서 旬의 "십일(十日)"이 증거 된다. "십자가의 날". 내 몸에 "예수님의 빛을 옮겨 심은 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 들이는 것. 하나님의 형상인 선(善: good)에 접근하는 것은 그리스의 십자가와 "함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의 가장 큰 무기는 "죽음"이 최대, 최후다. 이 것이 바로 악의 종착역이다. 이 악의 종말에서 영원한 생명을 연결시키는 것이 빛이요, 이 것이 십자가의 빛=十日=旬으로 이어진다. 하여 旬으로 이어지는 선(善)이 곧 하나님의 형상(God's Image)이다. 악이 상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미지(Absolute Image)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형상"이다. 예수님의 육체는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신다." 까닭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Sure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age-마태복음 28: 20" 이 것이 "내 몸에 십자가의 빛(旬)"을 받아 두지 않으면 안되는 명령이자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旬에 이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다가 밝은 빛 홀연히 보고, 저 멀리 하늘 문 환하게 보임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맥데니엘(Rufus H. Mcdaniel) 목사가 지은 찬송 "Since Jesus come into my heart: 주 예수 내 맘에 오심(旬)"을 찬양하며 기쁨이 솟는다. 탈북자들보다 한국의 동반자살자들에게 더 급한 찬송이다. 김정일이 이 찬송으로 旬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무현은 말할 것도 없고. 신영각(한미 노인회 회원) 본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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