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9)
보스톤코리아  2023-02-27, 12:38:58 
681년7월1일(양력 7월21일) 문무왕이 사망하였다. 문무왕은 사망하기 전에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장문의 유언(유조遺詔, 삼국사기 권7 문무왕조에 그 원문이 자세하게 실려있다)을 남겼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부왕의 유언에 따라 문무왕을 화장하여 동해 바다 대왕암에 수장하였다. 수중에 안장된 능陵은 동서고금에서 유일무이한 수중왕릉(일 것)이다. 문명태후와 문무왕이 연이어 사망하자 그들을 믿고 수 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조정의 실세 김흠돌 일파는 방패막이 사라짐에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새로이 등극할 정명태자(신문왕)와 태후가 될 자의왕후에 의해 무거운 죄과를 치루어야 될 것은 자명하였기에, 흠돌은 진공과 흥원 등과 함께 공모하여 역모를 일으켰다. 흠돌 일파는 문무왕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왕성 밖에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을 출동시켜 상대등 김군관의 집과 인명전군이 거처하고 있던 야명궁을 포위하여 그들의 손발을 먼저 묶었다(화랑세기에는 “야명궁을 핑계삼아 인명을 옹립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명은 문무왕의 후궁이고 인명전군은 야명의 아들이다).
그러나 비밀리에 하기로 한 그들의 거사는 곧 호성장군 김오기에게 보고되었다. 당시에는 많은 화랑도들이 시위삼도侍衛三徒429) 에 포함되어 왕을 가까이서 호위하고 있었고 왕궁과 경외를 수비하는 병사들 가운데도 많이 있었다. 즉 상당수의 화랑도들이 흠돌과 진공과 흥원의 지휘하에 있었다. 그래서 많은 화랑도들이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거사에 동원되었다. 다행히 그 화랑도 가운데 평소 김오기를 존경하고 따르던 낭두郎頭 한 명이 거사의 전모를 세세히 알고 있었다. 그는 흠돌 일파의 계책을 김오기에게 알려주었고, 이에 오기는 순지順知, 개원愷元, 당원幢元, 원수元帥, 용원龍元 등과 함께 자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私兵을 동원하여 시위삼도의 지휘관인 대감大監들을 제압하였다. 그러자 흠돌 일파는 계획의 차질에 놀라 즉시 군사를 동원하여 월성을 포위하였다.
당시 김오기와 함께 ‘흠돌의 난’ 을 제압한 장군들의 면면을 보면, 순지順知는 역모를 진압한 후 683년(신문왕3년)에 중시로 임명되었다(흠돌이 난을 일으킬 당시에는 김천존이 중시로 있었는데 그는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나당전쟁 당시 대당총관의 한 명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유능한 장군이다). 개원愷元은 태종무열왕과 문명왕후의 7남으로 695년(효소왕4년)에 상대등이 되었다. 당원幢元은 부모가 태종무열왕과 보룡인데, 이찬(2등급)의 벼슬을 하였고, 696년에 중시가 되었다. 무열왕의 장남 김법민(문무왕, 어머니는 문명왕후)의 부인은 보룡의 장녀 자의이다(자의의 아버지는 김선품이다). 원수元帥(또는 원사元師)는688년(신문왕8년)에 이찬의 벼슬로 병사한 전임 대장大莊을 이어 중시가 되었다. 원수는 19세 풍월주를 역임한 김흠순의 넷째 아들이다. 김흠순은 김유신의 동생이다. 흠순은 아들 아홉을 두었는데 셋째 아들 반굴만 사촌인 영광令光(김유신의 딸이다)과 혼인하였고, 나머지 아들들은 모두 17세 풍월주 김염장의 딸들과 혼인하였다. 용원의 가계 기록은 없는데 김염장의 처남(후처의 형제)일 가능성이 많다.
‘흠돌의 난’ 은 결과적으로 화랑도와 화랑도의 충돌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흠돌과 진공과 흥원은 화랑의 풍월주를 역임했거나 그에 버금가는 지위에 있었고, 또한 그들의 휘하에서 (어쩔 수 없이?) 반란군에 가담했던 무리들도 전현前現 화랑도들이었다. 동시에 ‘반란의 역도’ 들을 진압한 김오기의 장졸들도 역시 전직 풍월주들과 전현 화랑의 무리들이었다. 

429) 시위부는 왕궁에서 국왕을 호위한 부대인데, 624년(진평왕 46년)에 처음 조직된 것으로 보고있다. 그 후 651년(진덕여왕5년)에 3도三徒로 나누어 재편성하였다. 그리고 ‘흠돌의 난’ 이 일어난 후, 685년(신문왕 5년)에 재편성할 때는 종전의 감監을 폐지하고 장군을 두었다. 장군은 6명을 두었는데 그들의 관위는 급찬(9등급)에서 아찬(6등급)까지로 하였다. 그리고 대감도 6명을 두었다. 대감의 관위는 나마(11등급)에서 아찬까지로 하였다. 그리고 대두隊頭 15명을 두었다. 그들의 관위는 사지(13등급)에서 사찬(8등급)까지였다. 그리고 항項을 36명을 두었는데, 그들의 관등은 사지에서 대나마(10등급)까지였다. 마지막으로 졸卒은 117명을 두었다. 그들은 선저지先沮知(조위造位라고도 하며, 신라 17관위 중 최하위 관등이다) 로부터 대사(12등급)까지 임명하였다. 
즉 신문왕은 흠돌의 난을 진압한 후 시위부의 위상을 높혀 귀족들로부터의 위협을 막고 전제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종전의 감監 위에 장군을 두었다. 시위부에 소속된 장졸들은 도합 180명이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슬픔에 감염된 미 여고생…3명 중 1명꼴 극단선택 고민" 2023.02.27
슬픔과 절망감에 휩싸인 미국의 여고생 비율이 미 정부 기관의 2021년 조사에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블룸버그 통신 등이 13일(현지시간..
주식 투자와 도박 2023.02.27
2020년 ‘주식투자 열풍’, ‘주식시장과 팬데믹’, ‘주식투자의 위험한 꿈’ 등의 여러 제목으로..
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023.02.27
681년7월1일(양력 7월21일) 문무왕이 사망하였다. 문무왕은 사망하기 전에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장문의 유언(유조遺詔, 삼국사기 권7 문무왕조에 그 원문이..
미국 내에서 취업 비자 갱신을 제공하는 파일럿 프로그램 및 우편으로 ADIT 스탬프를 발급하는 파일럿 프로그램 2023.02.27
미 국무부는 H-1B 비자, L 비자 및 현재 비자 갱신을 위해 해외 여행이 필요한 기타 임시 비자를 소지한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비자 갱신 옵션을 제공하기 위해..
신출내기 전도사의 고국 방문기 2023.02.27
"물음표를 품었던 여행이 느낌표가 되기 까지의 시간은 불과 20여일이면 족했다"2018년 봄, 황사가 기승을 부릴 때 서울 땅을 밟았으니 그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