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19세 풍월주風月主 흠순공欽純公(10)
보스톤코리아  2021-03-08, 11:32:09 
선덕왕 김양상이 785년1월13일 후사가 없이 죽고 나니 국인들은 혜공왕의 10촌 형제인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는 그때 궁궐 북쪽 20리 밖에 살고 있었다. 급히 말을 몰아 궁궐로 향했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내린 폭우로 알천閼川의 강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 도하의 방책을 세우며 애를 태우고 있던 중, 궁궐에 있던 김경신이 반역을 도모하여 왕위에 올랐다. 그가 제 38대 원성왕이다. 그는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조상 현창사업을 하였다. 즉 고조부로 부터 아버지까지 모두 왕으로 추존하였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전왕 선덕왕 김양상의 아버지 개성왕(추존왕)과 제33대 성덕왕의 사당을 헐어버렸다. 그리고 시조대왕, 태종대왕, 문무대왕 및 할아버지 흥평대왕과 아버지 명덕대왕으로써 5묘를 삼았다. 원성왕 김경신은 내물왕의 12세손(삼국유사에는 11세손), 그리고 선덕왕과는 형제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가계가 불분명하다.

원성왕은 왜 즉위와 함께 선대 왕들의 사당을 헐어 버렸을까? 37명의 선대왕들 중에 단지 두 왕, 성덕왕과 선덕왕의 아버지(개성왕) 사당이다.
선덕왕의 아버지는 김효방이고, 어머니는 사소부인으로 성덕왕의 딸이다. 두 사당을 헐어버린 원성왕은 본인의 직계조상의 사당(5묘, 시조대왕, 태종대왕, 문무대왕, 할아버지 흥평대왕 – 추존왕 김위문, 아버지 명덕대왕 – 추존왕 김효양) 으로 대체했다. 이는 원성왕이 선덕왕과 혈연관계가 없거나 아주 멀다는 확고한 증거이다. 5묘 중 시조대왕은 아마도 김씨의 시조왕인 제13대 미추왕일 가능성이 크다(제17대 내물왕일 가능성도 있다. 원성왕 김경신은 내물왕의 12세손이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태종대왕은 무열왕 김춘추이고, 문무대왕은 김춘추의 아들 김법민이다.

이로 보아 김경신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방계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 김춘추가 장남 문무왕 김법민을 비롯하여 10여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 김법민의 직계 후손과 차남 김인문의 후손을 제외하고는 별로 기록이 없다. 문무왕의 직계 후손 마저도 혜공왕을 마지막으로 절손되었다. 그럼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 기록된 원성왕 김경신의 가계를 보면 그의 아버지는 김효양, 조부는 김위문, 증조부는 김의관, 고조부는 김법선, 그리고 6대조는 김마질차 또는 김마차이다. 그런데 김마차金馬車의 선대 기록은 없다. 다만 화랑세기에 비슷한 이름이 김춘추의 아들로 등장한다. 김춘추는 용보龍寶329) 라는 첩을 두었는데 용보에게서 마득馬得과 거득車得을 낳았다. 그들이(또는 그가) 김마차라면 전체적인 그림이 조금 보이기는 한다. 그럼 만일 김마득/거득이 김경신(원성왕)의 6대조이고 태종무열왕의 서자라면 과연 김경신은 내물왕의 12세손인가? 내물왕은 아들 셋을 두었는데 장남은 제19대 눌지왕이고 차남 복호, 삼남 미사흔이다. 눌지의 아들은 제20대 자비왕이고, 자비의 아들은 제21대 소지왕이다. 소지왕은 후손이 없었다(후궁 벽화가 낳은 산종이란 서자가 있었는데, 소지왕이 죽을 때 갓난 아이었다). 그리고 방계의 지증왕이 왕위를 이었다. 제22대 지증은 내물왕의 차남 복호의 손자이다. 그리고 아들 법흥왕, 조카/외손자인 진흥왕, 차남 진지왕으로 이어졌다가 진흥왕의 장손자 진평왕, 장녀(또는 차녀) 선덕여왕, 선덕의 사촌 진덕여왕, 그리고 다시 왕위는 진지왕의 손자 김춘추에게로 이어졌다. 그래서 김경신이 태종무열왕의 방계족이라면 내물왕의 14세손이 된다. 

그럼 다시 원성왕 김경신의 뿌리보다 더 헷갈리는 신라 56왕 중 가장 미스터리한 선덕왕 김양상의 가계를 따라가 본다. 먼저 삼국사기에는 “선덕왕宣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양상良相이다. 나물왕奈勿王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해찬 효방孝芳이다. 어머니는 김씨 사소부인으로 성덕왕의 딸이다” 

삼국유사(왕력편)에 추가로 선덕왕의 계보가 나온다 “김씨이며 이름은 양상亮相이다. 아버지는 효방孝方 해간이니 개성대왕開成大王으로 추봉되었는데 원훈元訓 각간의 아들이다” 여기서 김양상의 할아버지 원훈이 등장한다. 이 원훈이 누구인가? 삼국사기에서 두 차례 등장한다. 성덕왕 즉위년(712년9월)에 “아찬 원훈元訓을 중시로 삼았다” 라는 기록과 713년7월에 “중시 원훈元訓이 관직에서 물러나 아찬 원문元文을 중시로 삼았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 두 사서의 기록만으로는 선덕왕의 선대 가계를 더 이상 알 수 없는데, 화랑세기를 보면 놀라운 사실과 함께 원성왕이 왜 개성대왕(추존왕 김양상의 아버지)과 성덕왕(김양상의 외할아버지) 사당을 헐어버리고 태종무열왕계의 사당으로 대체했는지 알 수 있다. 화랑세기 19세 풍월주 김흠순조의 기록을 보면 모든 퍼즐이 맞추어진다.
“(흠순의) 넷째 아들 원수元帥, 여섯째 아들 원선元宣은 모두 중시中侍가 되었는데 보단의 소생이다. 아홉째 아들 원훈元訓 또한 중시였는데 곧 이단의 소생이다” 
이 전체적인 기록들로 보아 신라의 제37대 선덕왕 김양상은 김흠순의 증손자이다. 
곧 김양상은 내물왕의 후손이 아니라 가야 김수로왕의 후손이다!

김양상의 아버지는 김효방이고, 효방의 아버지는 김원훈이며 원훈의 아버지는 김흠순이다. 김흠순(김유신의 동생)의 아버지는 김서현이며 서현의 아버지는 김무력이고 무력의 아버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이다. 구형왕은 법흥왕(532년) 때 신라에 항복했다.
결국 원성왕 김경신은 김양상보다 늘 한 걸음 뒤에서 조력하다가 왕위에 오름과 함께 신라 김씨 계보를 바로 세우고자 개성대왕의 사당을 헐어야만 했고, 동시에 선덕왕의 외조부 성덕왕의 사당도 함께 헐었다.    

329) 용보는 김용춘(김춘추의 양부)이 첩 홍주와 낳은 딸이다. 홍주는 9세 풍월주를 역임한 비보랑의 딸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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