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85 |
화랑세기花郞世紀, 12세 풍월주風月主 보리공菩利公(4) |
보스톤코리아 2019-08-26, 10:23:55 |
하종이 풍월주의 위에 오르기 전부터 보리는 하종에게 속한 낭도였다. 어느날 하종을 따라 신궁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 때가 보리의 나이 13살인 585년이었다. 하종의 나이는 22세였고, 내외종간인 그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늘 의기투합하여 친근하게 지냈다. 미생이 갓 풍월주에 취임한 때였고, 하종은 우방대화랑이었으며 보리는 하종의 배려로 우방화랑이 되어 있었다. 하종은 보리에게 처음으로 신궁을 ‘관람’ 할 기회를 주었다. 그들이 들어간 신궁내부의 장면을 구현할 수 있는 기록에 의하면, 법흥왕과 후궁 옥진, 아시공과 태종 이사부도 신궁에 봉안되어 있었다. 법흥왕과 후궁 옥진은 상像(교신상)으로 등장하는데, 아시공과 태종은 조각상인지, 화상인지 아니면 위패로 모셔져있는지 알 수 없다. 화랑세기(필사본)에 기록된 그 부분이 탈자가 많이 나오는데, 탈자가 없다면 그들도 어떤 형태로 봉안되었는지 알 수 있을텐데 아쉬움이 많다. 그리고 하종과 보리가 본 신神들은 법흥왕과 옥진, 아시공과 태종만이 아니고 분명히 더 있었을 것이다. 태종이 살아 있었을때 자신의 아들 세종전군에게도 절을 하면서 생신生神인 지소태후(태종의 부인)의 아들이기에 세종도 (비록 전군이기는 하지만)신화神化 될 수 있다고 한것으로 보아, 그 당시 신궁에는 지소의 상像도 봉안되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즉 신궁에는 왕들만 신격화되어 모셔진것이 아니라 일부 후궁과 신하들도 봉안되었다. 곧 신라인들은 사람은 죽어서 신이 된다고 생각했으며, 왕을 비롯한 최고 지배층들이 신궁에 모셔졌다. 그리고 포사(포석정)와 신궁은 여러가지의 길례와 의식을 행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사례중에서 몇가지만 보아도 8세 풍월주 문노와 윤궁의 결혼식은 포사에서, 하종과 수종의 전군 봉례의식은 신궁에서 치루어졌다. 12세 풍월주 보리공 역시 포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당시 보리공은 13세였고 그의 부인 만룡은 7세였다. 아마도 보리는 자신이 결혼식을 올릴 신궁을 하종과 함께 사전답사 겸 찾지 않았을까? 만룡은 동륜태자(진흥왕의 장자, 진평왕의 생부)의 부인이었던 만호태후가 정숙태자(진흥왕과 숙명공주의 아들)와 정을 통해 낳은 딸이다. 하종과 보리는 당시 분명 미실의 아들과 숙명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었음을 미실의 동생인 미생의 ‘넋두리’ 에서도 볼 수 있다. 화랑세기의 기록에는, [그 때가 건복建福2년으로 보리공의 나이 13살이었다. 하종공이 우방대화랑이 되었다. 그러므로 공은 특별히 뛰어넘어 우방화랑이 되었다. 미생공이 부러워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보다 낫다” 했다] 보리공의 어머니 숙명은 하종공의 어머니 미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의 인통姻統이 다르기에 서로 경쟁하며 늘 긴장관계에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런데 그들이 늙어가면서 서로 앙금을 가라앉히고 왕래하면서 지냈다. 이렇게 친근하게 지내도록 하는데는 보리가 중간에서 많은 역할을 하였다. 먼저 미실과 숙명은 서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아들 보리와 하종은 끔찍히도 사랑하였다. 보리는 내외종 형인 하종을 믿고 따르며 잠시도 떠남이 없이 곁에서 충성을 다하였다(당시에는 충성을 군신관계에서만 사용된것이 아니고 상하관계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에 미실은 늘 보리를 칭찬하였고 진심으로 사랑하였기에 어식御食이 내릴때면 보리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렇게 서로의 아들을 사랑하면서 그들은 가까워졌다. 진골정통의 주主가 된 만호태후는 숙명의 도움으로 진골정통의 세력을 더욱 확장하였다. 이에 위압을 느낀 미실은 애함으로 하여금 보리와 결혼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만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만호는 자신의 딸 만룡을 보리의 적처로 혼인시키려 했다. 이에 이화공이 그들의 나이가 어리다고 반대를 하였다. 당시 보리는 13살, 만룡은 7살이었다. 위에 등장하는 몇명의 혼인과 혈연관계를 보면, 만호태후의 부모는 이화랑과 지소태후이다. 그리고 진흥왕(만호의 동복이부 오라비)의 장자 동륜태자, 즉 조카와 혼인하여 장자 진평왕과 차자 백반(진정갈문왕) 그리고 삼자 국반(진안갈문왕)을 낳았다(그들의 이름 백반과 국반의 뜻은 밥과 국이다). 그리고 남편 동륜이 죽은 후 숙흘종(부모는 입종과 금진)과 혼인하여 딸 만명을 낳았다. 이 만명이 김유신의 어머니이다. 숙명공주의 부모는 태종과 지소태후이다. 애함은 미실의 딸이다. 보리의 부모는 이화랑과 숙명공주이며, 숙명공주가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 궁궐을 월담하기 전에 어머니 지소에 의하여 진흥왕(숙명의 동복이부 오라비)과 혼인하여 정숙태자를 낳았다. 만호가 조카인 정숙과 사통하여 낳은 딸이 만룡이다. 만룡은 보리공과 혼인하여 예원공(20세 풍월주,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조부)과 보룡을 낳았다. 보룡의 딸 자의가 676년 신라를 통일한 문무왕 김법민의 정비 자의왕후이다. 혼맥婚脈이 상당히 복잡하게 엮여있는데, 신라의 골은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다(삼국사기에는 성골, 진골 등으로…, 화랑세기에는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란 신분으로…).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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