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63 ] 옥수수의 귀?
보스톤코리아  2019-06-03, 10:00:11 
외국어 학습에서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동음이의어이다. 특히 우리말은 한자를 도입하면서 성조를 제거했기 때문에 동음이의어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예를 들면, [마]로 발음되는 글자가 한글 프로그램에만 28자가 등재돼 있다. 전후 맥락을 통해 뜻을 구별할 수 있지만 한자를 쓰지 않는다면 그 뜻을 구별하기가 쉽지는 않다. 일부에서 한자병용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이기도 하다.  

동음이의어는 언어의 경제적 사용이라는 본질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언어에서도 동음이의어가 없을 수는 없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economy란 단어가 어떻게 '경제'와 '절약'이라는 전혀 관계없는 뜻을 가지게 되었을까. ear란 단어가 어떻게 '귀'란 뜻과 옥수수를 세는 단위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two ears of corn은 옥수수의 두 귀가 아니라 옥수수 두 개란 뜻이다. 이는 마치 우리말 '눈'이 snow와 eye라는 전혀 관계없는 뜻을 가지게 된 것처럼 설명할 길이 없다.

동음이의어가 학습상의 부담만 주는 것은 아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해서 수많은 촌철살인의 유머들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철자와 발음이 모두 같은 것도 있고,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만 같은 것들도 있다. bank는 철자와 발음이 같은 것으로 '은행'과 '강둑'이란  두 가지 뜻을 가진다. tail과 tale은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것으로 '꼬리'와 '이야기'란 뜻을 가진다. 

동음이의어를 최대로 활용해 재치 있는 문학작품을 선사한 이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이다. 평생 수학 교사이기도 했던 그는 본명이 찰스 럿위지 도지슨으로 우리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든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생쥐가 앨리스에게 "Mine is a long and a sad tale!"(내 이야기는 길고도 슬퍼.) 라고 말하자, 앨리스는 "It is a long tail, certainly."(그게 긴 꼬리임은 틀림없지.)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but why do you call it sad?(근데 그게 왜 슬프다고 하는 거야?)" 쥐는 자신의 이야기(tale)가 길고 슬프다고 했지만, 앨리스는 생쥐의 꼬리(tail)가 긴 건 틀림없지만 꼬리가 왜 슬프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영어로는 말장난이 되지만 우리말 번역으로는 도저히 그 맛을 살릴 수가 없다. 작가는 동음이의어 tail과 tale을 활용해서 말장난을 한 것인데 우리말에서는 '꼬리'와 '이야기'가 동음이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펀(pun)이라 하는 이러한 말장난을 셰익스피어를 제하고는 루이스 캐럴만큼 자유자재로 구사한 작가도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영국에서 인기를 끈 텔레비전 프로그램 <Mind Your Language>란 프로그램도 펀을 이용한 재치와 위트로 가득하다. 영어를 배우는 성인 외국인들로 구성된 교실에서 영어학습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화들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debate란 단어는 '논쟁'이지만 한편으로는 미끼(bate)를 빼다(de-)란 말이 될 수도 된다. take the chair는 '대신 사회를 보다'란 말도 되지만 '의자를 가져가다'란 말도 된다. 교사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대신 사회를 봐달라고 하는데 학생은 갑자기 의자를 가져가는 식이다. 좋은 역할(good)과 나쁜 역할(bad) 중 어느 쪽을 맡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나쁜 역할을 맡으라고 하자 학생이 대답한다. Oh, I am good at being bad.(나쁜 역할도 참 잘해요.) 동음이의어에서 교사가 의도한 뜻과는 다른 뜻을 학생들이 받아들임으로써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해프닝들을 보여준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시트콤인 <Big Bang Theory>와 더불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수준 높은 지식과 예리한 관찰, 그리고 예기치 못한 말장난을 뒤섞어서 자연스런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언어로 표현되는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유머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언어를 상당히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유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음이의어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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