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58 ] 낙타가 왜?
보스톤코리아  2019-04-22, 10:42:25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나오는 말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익히 들어본 성경 구절이다. 어린 시절 이 구절을 처음 들었을 때 필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낙타가 왜 바늘구멍을 빠져나갈까? 그런 궁금증은 박사학위를 받으러 미국에 유학을 왔을 때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 어떻게 비교대상이 되는지 영 알 수가 없었다. 

당시 같은 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배철현 박사를 만날 기회가 있어 그 구절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분은 힛타이트어, 아카디아어, 페니키아어는 물론 예수님이 사용했던 아람어를 포함한 중근동 지역의 고대 언어들을 두루 섭렵한 대단한 학자였다. 그분의 설명은 이러했다.

영어 camel은 프랑스어의 중계를 거쳐 라틴어 camelus에서 전해졌다. 이 단어는 또 그리스어 kamelos에서 왔고, 이 단어는 히브리어나 페니키아어 gamal에서 왔다. 또 이 단어는 궁극적으로는 ‘짐을 지다’란 뜻의 아랍어 jamala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이지만 아랍의 낙타는 혹이 하나인 ‘단봉낙타’이고 몽골의 낙타는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이다. 낙타는 사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가축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 이름으로도 자주 쓰인다. 이집트 2대 대통령이었던 Gamal Nasser를 비롯해 이집트 혁명 직전의 대통령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의 아들도 Gamal Mubarak이다. Gamal은 Jamal, Gimel 등으로 철자되기도 한다. 물론 gamal은 ‘아름다움’이란 뜻을 가지기도 하니까 이 이름들이 ‘낙타’란 의미로 지어진 것인지 ‘아름다움’이란 의미로 지어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랍세계에서는 낙타가 아름다움의 상징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필자는 방송 녹화를 위해 튀니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낙타를 타고 하루를 보낸 기억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사막의 유랑민족인 베드윈과 하루를 보내는 여정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그들은 여정을 멈추고 임시 천막을 쳤는데 낙타들은 결박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낙타들은 멀리 가지 않고 주인 곁에서 풀을 뜯을 뿐이었다. 

아무튼 배철현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고대 아람어에서 낙타를 나타내는 단어와 동아줄을 나타내는 단어가 어근이 같다고 한다. 아랍어나 히브리어는 모음을 별도로 표기하지 않고 자음 어간만을 쓴다. 물론 구어에는 모음이 있지만 문어에는 모음 표기가 없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모음을 추가해서 읽을 뿐이다.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학자들이 그만 ‘동아줄’을 ‘낙타’로 잘못 표기하여 생긴 잘못된 번역이라는 것이 그분의 설명이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맞는다 하더라도 성경이 고쳐질 리는 만무하다. 종교 경전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지적 호기심으로서 따져보는 것뿐이다. 부자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동아줄을 바늘구멍에 끼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 라고 하면 금방 이해가 간다. 바늘에 들어가는 가는 실 대신에 동아줄을 넣기는 어려울 테니까. 낙타비유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 쉽게 와 닿는다.

반론도 있다. 어떤 학자는 고대 히브리 지역에 흔했던 동굴 집에는 낙타를 넣어두는 일종의 마굿간이 있었는데 그 문이 아주 작아서 낙타를 집어넣기가 어려웠던 데서 이러한 비유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5장에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로 여덟 가지 복을 가진 사람들을 언급한다. 이름 하여 ‘참 행복’ 혹은 ‘여덟가지 행복’이라 번역하는 the Beattitudes이다. 지면관계상 모두 옮길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여 복이 있나니 천국의 너희 것이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호의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부자들은 언제나 사회적 의무를 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noblesse oblig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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