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45 ] 수도승이 형제라고? |
보스톤코리아 2019-01-14, 11:57:51 |
참으로 이상했다. mother, father, brother, sister. 가족을 나타내는 말들은 왜 -er로 끝날까? 필자가 중학교 시절 품었던 의문이다. teacher처럼 행위자를 나타내는 어미 -er을 떼어내면 moth(나방), fath(길이의 단위), broth(수프), -sist(앉다)가 되니, 이건 아닐 테고. 대학원에 가서도 이 궁금증은 가시질 않았다. 겨우 알아낸 것은 이 단어들이 모두 산스크리트어에서 왔다는 사실 뿐. 특히나 brother는 유럽어와 산스크리트어의 조상어로 추정되는 언어에서 bhrāter-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대 힌두어는 /h/발음이 매우 강하게 발음된다. 인도식 영어를 알아들으려면 thirty가 [ㅌ허티], thousand가 [ㅌ하우전]으로 들린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아무튼 bhrāter-는 인도어를 벗어나는 순간 /h/를 상실했고 유럽어들에서 brāter-로 남게 되었다. 영어, 독일어, 노르웨이어 등을 포함하는 게르만어나 슬라브어에서는 계속해서 brāter-가 유지되지만 라틴어에서는 /b/가 /f/로 바뀌게 된다. 그 결과 brother(영어), Bruder(독일어), bror(노르웨이어), brat(러시아어) 등이 되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frère(프랑스어), fratris(라틴어), fratello(이탈리아어)가 된다. 우리말로 ‘탁발수도승’이라 번역하는 friar는 원래 프란시스코 수도단, 도미니카 수도단 등과 같이 구걸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기사단을 의미했다. 그들은 음식과 돈을 주는 모든 사람들이 볼 때 ‘형제’나 다름없었을 테니까. 줄리엣에게 가사상태에 빠지게 하는 비약을 건넨 사람이 바로 탁발수도승 Friar Laurence였다. 그는 치밀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계획을 로미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결과 로미오는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로미오가 죽은 후 깨어난 줄리엣도 다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초래된다. 둘이 해피엔딩을 맞았더라면 물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로미와 줄리엣>이 제외되었겠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아무튼 라틴어에서 frat-는 ‘형제’란 뜻이다. 남학생들만의 사교클럽을 fraternity라 하고, ‘형제에 관한’이란 형용사는 fraternal이다. 마치 maternal(엄마의), paternal(아버지의)과 같은 유형이다. 필자가 프랑스어를 배우던 시절 선생은 Frère Jaques란 동요를 가르쳐주었었다. 잠꾸러기 자크야 아침종이 울렸으니 일어나라는 내용의 짧은 동요이다. 원래 friar는 피를 나눈 형제를 지칭했지만 어느덧 형제처럼 느껴지는 탁발수도승을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넓어졌지만, 더 넓게는 누구든 ‘형제’가 될 수 있다. 성경에 보아도 ‘형제여’란 단어가 자주 나오고 북아프리카나 아랍 지역을 가도 낯선 사람이 ‘헤이, 브라더’라고 말을 붙인다. 몇 년 전에는 이집트에서 ‘형제단’이란 혁명세력이 권력을 잡기도 했다. 낯선 사람에게 부르는 호칭으로서의 brother는 사실 friend란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친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빵을 먹는 관계라 할 수 있다. company, companion이란 단어는 바로 함께(com-) 빵(pan-)을 먹는 사이란 뜻이다. 빵(pan)을 파는 곳이 Panera라는 이야기는 전에 했었다. 친구는 방을 같이 쓸 수도 있다. 작은 방이란 의미의 라틴어 camera에서 온 프랑스어 camarade에서 약간 변형된 comrade는 오늘날 ‘동무’란 다소 미심쩍은 단어로 번역된다. 옛날 공산국가들에서 이 단어를 자주 썼기 때문이다. camaraderie란 추상명사는 프랑스어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조지 오웰이 쓴 <1984>에는 도처에 comrade란 단어가 나온다. ‘친구, 동무’란 아름다운 의미가 어느덧 공포와 감시의 용어로 바뀌어 듣는 사람에게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친구’ 혹은 ‘동무’라고 부르면서 고문을 가하는 사상경찰을 상상해보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을 함께 쓰는 사람’이란 의미의 comrade는 그렇다 치고, ‘빵을 함께 먹는 사람’이란 의미의 companion은 그런 식으로 의미퇴보를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산국가나 또 다른 어떤 전체주의 사회에서 comrade라 불리며 고문을 당한 사람이라면 그런 압제를 벗어난 후에도 comrade란 단어를 보는 순간 자기검열을 하는 트라우마를 겪을지 모른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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