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35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보스톤코리아  2018-10-29, 11:15:17 
언어도 변하고 표기법도 변한다. 색사비아(索士比亞)가 셰익스피어이고 가이사가 씨이저라는 사실을 알기는 쉽지 않다. 경음을 잘 사용하지 않았던 구한말 이전에만 해도 Peter는 베드로, Paul은 바오로, Timothy는 디모데로 옮겼다. 그러니 Caesar를 ‘가이사’로 옮기는 것은 당연했을 터. 그렇다면 Jesus를 ‘예수’로 옮긴 것은 어떤가? 이거야 말로 본토 발음에 가장 가까운 탁월한 음역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발음이 ‘예수’인데도 Jesus [지저스]라 옮긴 영어가 오히려 엉터리 음역이다. 

인명과 지명을 엉터리로 옮긴 영어가 문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영어를 배워야 하는 우리로서는 엉터리라도 알아둘 수밖에 없다. 라틴어로 쓰인 Jesus는 원래 남성명사 어미 -us가 붙은 것이고, ‘J’는 자음이 아니라 반모음, 즉 [이]였기 때문에 본토 발음과 똑같이 [예수]라고 발음되었다. 마치 Julius Caesar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발음되었던 것과 같다. 그런데 무식한 영국인들이 ‘J’를 영어식으로 발음하면서 [지저스]란 듣도 보도 못한 요상한 발음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어떤 언어든 옮겨지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변형은 불가피하다. 스페인어에서도 ‘예수’는 Jesus라 쓰고 [헤수스]라 읽는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에 ‘헤수스’란 이름이 유독 많은 이유는 기독교가 워낙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영어의 무지막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르단은 Jordan[조던], 예루살렘은 [주루슬럼]이라 둔갑시키고, 우리말 성경에서 ‘여리고’라고 번역하는 예리코는 [제리코]로 바꾼다. 독일의 요한은 영국에 가면 ‘존’이 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영어에 오면 [줄리어스 씨이저]란 엉뚱한 이름으로 바뀐다. 물론 다른 언어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러시아어에서는 [율리 체사르], 독일어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바뀐다. 러시아 황제를 뜻하는 ‘짜르’도 카이사르를 옮긴 것이다. 그나마 독일어의 [카이사르]가 원어에 가깝다고나 할까.  

영어에서도 물론 원래 발음을 가능한 한 살려 쓰려고 한다. 그래서 백인들이 정복한 인디언인 Seattle은 인디언어 식으로 [씨애를]이라 발음하고, 국립공원 Yosemite는 [요세미리]라 발음한다. 필자는 이 국립공원 이름이 [요세마이트]인 줄 알았다. 대개 -mite는 dynamite [다이너마이트]에서처럼 [마이트]로 발음되니까. 차용된 지 오래 되긴 했지만 아랍어에서 온 sesame도 [쌔서미]로 발음된다. same이 [세임]으로 발음되는 것을 생각하면 sesame가 [쌔서미]로 발음되는 것은 분명 영어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어에 일관성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멀리 있는 프랑스의 수도 Paris는 본토 발음이 [빠리] 임에도 불구하고 발음되지도 않는 /s/를 살려서 [페어리스]라 발음하면서, 정작 자기네 나라 땅인 Arkansas, Illinois 등은 프랑스어 식으로 마지막 /s/를 발음하지 않고 [아칸서], [일리노이] 등으로 발음한다. 영국의 Manchester는 [맨체스터]라 하면서 매사추세츠 주의 Gloucester는 [글루체스터]가 아니라 [글루스터]라 발음한다. 런던의 지하철역은 Uston [유스톤]인데 미국에 이식된 Huston은 [휴스톤]이라 하면서 humor는 또 [휴머]가 아니라 [유머]라 발음한다. 이러니 노아 웹스터가 이미 이백년 전에 철자법을 개혁하고 방대한 사전을 만들지 않았던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낯선 단어일수록 그 출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의 오픈마켓으로서 언어들까지도 뒤섞이기 때문이다. 애리조나 주의 Tucson이 인디언어 식으로는 [툭손]이지만, 영어식으로는 [투싼]이 된다는 사실을 듣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현대자동차 투싼을 아는 사람은 별개로 하고, 이 지명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우리의 입과 귀에 에펠탑이라 굳어진 Eiffel Tower는 영어식으로는 [아이플 타워]에 가깝고, 오리온 제과로 유명한 Orion은 [오리온]이 아니라 [어라이언]에 가까우며, 우리가 이데올로기라 하는 ideology는 [아이디알러지]에 가깝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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