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17] 고리땡을 아시나요?
보스톤코리아  2018-05-21, 13:46:21 
옛날 얘기치고 재미있는 건 별로 없지만 '고리땡'은 예외다. 필자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고리땡이 부의 상징이었다. 시내로 나왔더니 고리땡이 아니고 '골덴'이란다. 제일모직의 골덴텍스가 멋쟁이의 표지였다. 시간이 흐르고 종이 사전이 디지털 사전으로 대체된 지금 영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골덴이 아니라 '코르덴'이라 나온다. 코르덴은 영어 corduroy를 옮긴 것이다. corduroy가 어떻게 고리땡, 골덴, 코르덴으로 번역되었을까?  

잘못된 영어번역의 근원을 탐색해보면 대개 일본어를 거치면서 변형된 경우가 많다. 골덴이 딱 그런 경우이다. '골덴'을 '코르덴'으로 바꿔놓은 네이버의 야심작 파파고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돈 100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사전 치고는 참으로 무식하다. corduroy를 '골덴'에서 '코르덴'으로 옮겼다고 해서 원어에 더 가까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골덴'을 '코르덴'으로 바꿀 생각을 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골덴'은 프랑스인들이 영국산 천의 이름인 kings-cordes(왕의 옷감)를 프랑스어식으로 옮긴 corde du roi에서 유래한다. 이 단어를 다시 영어식으로 옮긴 것이 corduroy이다. 하지만 이 단어에서는 절대로 고리땡, 골덴, 코르덴이 나올 수 없다. 사실은 이 천이 골을 내어 만든 것이란 의미의 영어단어 cording을 일본인들이 자기네 말로 옮겼고 이걸 다시 우리말로 가져오면서 '골덴'이란 이름이 생긴 것이다. 원어에서 멀기는 '골덴'이나 '코르덴'이나 오십보백보인 셈이다. 

번역은 늘 어렵다. 오죽했으면 이탈리아 경구 중에 '번역은 반역(traduttore, traditore)'이란 말이 있겠는가. 꽤 오래 전에 한국에서 번역과 관련해서 일대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세계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의 번역본에서 저질러진 오류들 때문이었다. 작품에 나오는 magi를 '동방박사'라고 했어야 하는데, 번역자가 그만 '매기'라고 해버린 것이다. 부주의와 무성의가 빚어낸 참사였다. 성경의 관련된 부분만 찾아보았어도 이런 실수는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magi는 mago의 복수형이고 mago는 '주술사'를 뜻한다. mago의 형용사형이 magic이고 주술을 부리는 사람을 magician이라 한다. 인류학 저술에서는 mago와 magi를 특별한 전문용어로 사용한다. 덧붙이자면 magi의 발음도 [매기]가 아니라 [매자이]이다. 

혹자는 '주술사'를 왜 '동방박사'로 번역했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는데 고대에는 '주술사'가 박사이자 현자이자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magi란 단어가 딱 4회 언급되었는데 어디에도 세 명이란 이야기는 없다. 어떤 이유로 동방박사가 '세 명'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파크스트릿 교회의 목사님에 의하면, 초대교회 벽화에는 동방박사가 두 명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고 세 명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Harvard University를 중국어로는 哈佛大學이라 한다. 이걸 우리식 한자로 읽으면 [합불대학]이지만 중국어식으로는 [하포따쉐] 비슷하다. 비슷하다고 한 이유는 [포]가 아니라 /fo/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우리말 번역이 본토 발음에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말이 나온 김에 하버드대학의 중앙도서관이 와이드너 라이브러리이다. 1912년에 침몰한 타이타닉 호에 외동아들을 잃은 와이드너 가문이 아들이 다니던 대학에 재산을 기증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딴 도서관을 짓도록 했기 때문이다. 도서관 옆에는 중국식의 거대한 거북 비석이 있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인 보스톤 지하철을 건설하면서 희생된 중국인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대학이 세워준 것이라고 한다. 와이드너를 지나 옌칭 연구소로 갈 때마다 필자는 번역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무슨 무슨 센터라고 하는 center를 중국인들은 中心으로 번역한다. 처음엔 참 이상하게 와 닿았는데, 보면 볼수록 맞는 번역인 듯싶다. center는 중심이니까. 이걸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센터'라고 쓰는 우리가 다소 무성의한 것이 아닐까.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매스 검찰청, 무급인턴 고용회사에 55만불 벌금 2018.05.24
연방 정부는 무급 인턴을 허용하고 있지만 매사추세츠 주 검찰청은 매사추세츠 주법에 따라 정규직과 유사한 일을 하는 인턴은 반드시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舌 (설) 2018.05.21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She speaks with wisdom, and faithful instruction is on her to..
[ 오르고의 영어잡설 17] 고리땡을 아시나요? 2018.05.21
옛날 얘기치고 재미있는 건 별로 없지만 '고리땡'은 예외다. 필자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고리땡이 부의 상징이었다. 시내로 나왔더니 고리땡이 아니고 '골덴..
둥근 빛 (5) 2018.05.21
범인도 잡았는데 살인 동기가 없었다. 그 뉴스를 보며 남편이 계속 몸짓과 쉬운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량은 말 한마디에도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신..
'제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2018.05.21
제주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 다녀온 여행지다. 만 21살이 되던 해인 1985년 미국에 갔다가 1988년에 몇 개월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때 처음 제주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