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12] 다방에서 커피를 팔다니?
보스톤코리아  2018-04-09, 11:21:39 
다방에서 커피를 팔다니, 이건 마치 중국집에서 파스타를 파는 것만큼이나 안 어울린다. 자고로 중국집에선 ‘짜장면’을 팔고, 다방에선 ‘차’를 팔아야 맞는다. 적어도 어원상으로는 그렇다는 말. 왜 그럴까? 이번 호에서는 tea가 지나온 ‘길’을 따라가 본다.

세작, 우작을 구분하고 다도를 논하는 수준의 차 애호가들은 물론이거니와, 홍차와 녹차를 오로지 색깔로만 구분할 줄 아는 나 같은 문외한도 차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쯤은 안다. 중국인들이 발명한 종이와 화약은 서서히 역사적 소명을 다해가고 있지만, 차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을 뿐 아니라 여러 문화권에서 점점 더 깊이와 풍미를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음료로서의 tea는 Boston tea party라든가 1990년대 말의 미국 정치사에서 시끄러웠던 tea party movement에서 보듯이 중요한 역사적 고비마다 흔적을 남긴 정치 용어가 되기도 했다.  

영어 tea는 중국어로 茶라 쓴다. 우린 이 한자를 ‘다’ 혹은 ‘차’라 발음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茶房이라 쓸 때는 ‘다’로 발음하는데, 찻집이라 쓸 때는 ‘차’로 발음한다. 같은 글자가 이중으로 발음되는 이유는 이 글자가 중국의 두 가지 방언에서 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북경방언에서는 茶를 구개음화시켜서 ‘차’로 발음한다. 반면에 상하이나 홍콩 등에서 사용하는 광동어에서는 구개음화되지 않은 ‘테’로 발음한다. 이는 마치 밭 전(田)자를 북경어에서는 구개음화시켜서 ‘전’으로 발음하지만, 광동어에서는 구개음화되지 않은 ‘틴’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다. 

중국의 茶는 마카오를 점령한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1550년대에 처음으로 서양에 전해졌다. 북경어 발음인 cha는 포르투갈어에서 그대로 cha가 되었지만 영어에서는 chaa, tscha, chia 등으로 쓰였다. 인도에서도 chai라 한다. 필자는 지금도 아그라 기차역에서 마셨던 인도 차이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역에서는 놀랍게도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이 아니라 흙으로 만든 1회용 잔에 차이를 팔았다. 우유를 듬뿍 넣은 차이를 마신 후, 빗살무늬 토기처럼 생긴 흙 잔을 쓰레기통에 버리자니 아까워서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1회용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그릇은 그릇이니까. 물론 예상대로 귀국해서 짐을 풀었을 때 그 토기 잔은 산산조각이 나있었지만, 타지마할로 가던 기차역에서 1회용 토기잔에 차이를 마시던 추억은 고스란히 되살아났었다.

1590년대까지만 해도 영어에서 cha, tcha, chia로 쓰던 이름은 1650년대가 되면서 tay, thea, tey, tee 등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말레이를 점령한 네덜란드 상인들이 말레이어 tey를 유럽에 전파했기 때문이다. tey는 중국의 아모이 방언인 te에서 온 것이다. 쉽게 말해 cha는 구개음화된 북경어 발음이고, te는 구개음화되지 않은 광동어 발음이다. 재미있게도 thé(불어), te(스페인어), Tee(독어), thee(네덜란드어) 등은 모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전파된 이름이고, chai(러시아어), cha(페르시아어), tsai(그리스어), shay(아랍어), çay(터키어) 등은 모두 북경어에서 전해진 이름이다.   

우리말에서는 두 가지 발음 모두 사용하니, 꿩먹고 알먹고라고 해야 하나. 같은 글자인데도 茶房이라고 쓸 때는 “다방”이라고 읽고, 綠茶나 紅茶라고 쓸 때는 “차”라 발음한다. 
서양에 전해진 tea는 세계사의 큰 물줄기를 뒤바꾸는 역할을 한다. 보스턴 tea party 말이다. 1773년 영국의 높은 세금에 불만을 품은 신대륙 식민지인들이 영국으로의 출항을 기다리며 보스톤 항구에 정박 중이던 배에 실린 차를 불태우고 바다에 빠뜨리는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은 결국 미국의 독립전쟁을 일으킨 도화선이 되었으니 tea의 역사적 소명이었다고나  할까. 시간을 한참 건너뛰어 2009년 미국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보스톤 tea party에서 이름을 딴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남부와 중부에서 기승을 부린 tea party movement는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지도자 중의 한 명이었던 무명의 알래스카 주지사 세라 페일린을 일약 부통령 후보로 올려놓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밀크와 티를 반반씩 섞으면 milk tea일까, tea milk일까? 쓸 데 없는 궁금증이다. 따끈한 한 잔의 chai가 생각나는 시간이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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