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11] 퍼네라에서 만나요
보스톤코리아  2018-04-02, 11:27:16 
며칠 전이다. 필자의 지인이 어떤 미국인에게 위치를 설명하면서 여러 번 파네라 옆에 있다고 하는데도 상대방이 알아듣지를 못했다. "'파네라'가 아니고 '퍼네라' 라고 해보세요. '네'를 강하게!"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상대방이 알아들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정확하게 발음하는데 미국인들이 우리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옆에 있으면 종이에 적어서 보여주기라도 할 텐데, 전화상으로는 참 난감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영어의 강세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 빵집 Panera는 -e-에 강세가 있어서 [퍼네라] 라고 발음해야 한다. 강세가 없는 모음은 [어]로 약화된다. [어]로 쓰기는 했지만 발음기호는 /ə/이다. 미국인들은 America라 쓰고 [어메리카]라 발음한다. 절대로 [아메리카]가 아니다. 모음 -e-에 강세가 있기 때문에 -me-를 강하게 읽어야 한다. 이를 전문용어로 '슈와(schwa)'라 한다. 

오래 전 필자가 갓 대학에 들어갔을 때 교수님은 [버스티]란 말을 여러번 하셨다. 뭔 단어인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university를 그렇게 발음하신 것이다. 강세가 -e-에 있어서 앞부분은 아예 발음조차 하지 않으신 것이다. 경성제대에서 공부를 하셨지만 그 전에 미군부대에서 벨 보이를 하면서 영어를 배우셨다는 그 교수님은 강세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셨다.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건 강세(stress)이다. 강세가 없는 우리말은 마치 같은 키의 병정들이 같은 속도로 행진하는 모습이라면, 영어는 키가 들쑥날쑥한 어른과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서로 다른 속도로 행진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어를 음절박자언어, 영어를 강세박자언어라 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는 신체적 미발달로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이와 엄마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개별 단어들의 발음이 아니라 문장 전체의 높낮이를 알아듣기 때문이다. 개별 음이 아니라 전체적 윤곽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세 살 때 미국에 온 필자의 둘째 아이가 놀이방에 가기 시작한지 며칠 안 되어서 "아빠, [아이돈워너고우]가 무슨 말이야?" 하고 묻는 것이었다. "응, '가기 싫어', 이런 말이야." 대답을 하면서도 필자는 색다른 충격을 받았다. 이걸 중학생에게 설명한다면 얼마나 복잡한가. don't는 부정어, wanna는 want to의 연속발음, to go는 부정사, want는 부정사를 목적어로 취하는 동사 어쩌구. 세 살짜리 어린아이에게는 이런 모든 문법지식이 불필요하다. 아이는 한 문장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결코 어른처럼 문장을 분석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언어를 빨리 배우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영국의 어떤 언어학자는 자신의 손녀가 자주 하던 [아왐미]란 말을 알아듣지 못하다가 마침내 그것이 "I want milk"란 문장이었음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두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단어와 문장이 어떻게 다르겠는가. 둘 다 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는 '아이돈워너고우'든 '아왐미'든 금방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문장을 갈갈이 분해한다. 그리고 부정사가 어쩌구 하면서 문법의 미로 속으로 빠져 들어서 마침내 '영어는 정말 어려워' 하면서 남 탓을 한다.  

짧은 단어는 상관없다. 어차피 모음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모음이 둘 이상인 단어에서는 반드시 강세에 주의해야 하고, 다소 과장될 정도로 강세 부분을 크고 강하게 발음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Boston을 한국인들은 [보스톤]이라 하지만 미국인들은 [바스톤]이라 발음한다. 첫 번째 -o-가 강세로 인해 좀 더 강해진 것이다. Panera는 [퍼네라]이지만, camera는 강세가 첫 번째 -a-에 있고 모음 -e-가 약화되어 [어]가 되므로 [캐머러]로 발음한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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