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8]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보스톤코리아  2018-03-05, 10:43:58 
중학 시절의 일이다. 필자가 살던 셋집에 주인이 방치해둔 서가가 있었다. 손에 잡히는 책을 방으로 가져와 펼쳐보았더니 얼핏 Mozart, Beethoven에 이어 Beatles란 이름이 보였다. 어느 날 수업 중에 몰래 책을 보고 있다가 음악 선생님께 걸려서 책도 빼앗기고 꿀밤도 먹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갔더니 선생님은 꾸지람 대신 영어공부 열심히 하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선생님, 베아틀레스가 누구예요?” 선생님은 모르겠다며 책을 펴보시더니 여전히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책을 돌려주셨다. 대학생이 되고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그 책을 접하게 되었다. Beatles는 ‘베아틀레스’가 아니라 ‘비틀즈’였다. 주인공이 모차르트, 베토벤과 더불어 비틀즈를 좋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오래 전 일이었지만 필자는 무식함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비틀즈를 몰랐다니!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건 필자의 잘못이 아니라, 철자가 이상한 영어가 나쁜 것이다. 영어의 엉터리 철자법은 사실 너무나 악명 높다. 일찍이 버나드 쇼는 영어철자의 무원칙함을 비판하면서 fish를 ghoti라 쓸 수도 있다고 했다. enough에서 gh는 /f/, women의 o는 /i/, nation의 ti는 /ʃ/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제와는 상관없지만,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란 비문이 새겨져있다. 96세까지 장수한 사람이 이룬 것이 별로 없다는 한탄조로 남긴 비명이라 참 아이러니하다. 

영어는 발음과 철자가 달라도 너~무나 다른 언어이다. 따라서 영어를 배울 때는 발음을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해당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지 못하면 틀린 발음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ea-란 동일한 철자도 여러 가지로 발음된다. Yeats는 버나드 쇼와 같이 아일랜드 사람이라 ‘예이츠’라 발음되지만 Keats는 영국시인이라 ‘키이츠’라 발음된다. 미국의 40대 대통령이었던 Reagan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일본 언론에서 ‘리건’으로 표기했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공식적으로 ‘레이건’으로 수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의 조상이 아일랜드에서 왔기 때문이다. <신곡>을 쓴 단테의 뮤즈였던 Beatrice는 ‘비어트리스’라 발음하고, 인디언 부족의 이름인 Seattle은 ‘씨애를’이라고 발음한다. Korea는 ‘고려’에서 유래하니까 ‘코리어’가 되는 것이다. 

미국처럼 전 세계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에서는 상대방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상대방에게 올바른 발음과 철자를 물어보는 것이 안전하다. 필자의 지인 중에 Ng란 성을 가진 분이 있다. 언어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는 ‘잉’이라 발음한다고 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천재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고등학교 시절 지도에서 kyzyl이란 지명을 보고 이 단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모음이 없이 어떻게 발음될 수 있다는 건가, 하는 그의 궁금증은 후에 투바의 수도인 키질을 방문하려는 계획으로 이어지지만 아쉽게도 이 계획은 그가 타계함으로써 성사되지 못한다. 후에 그의 친구와 아들이 투바를 방문하고 쓴 여행기는 그런 사연이 있어서 더욱 애틋하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저명한 과학자로서 그는 그곳을 쉽게 방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개인적으로 여행 준비를 했다. 러시아어를 배우고, 투바어를 배우고, 편지를 보내고... 그러다가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왜 그랬는지는 그가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권력이나 끈을 이용해서 그곳에 가는 것은 마치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 근처에 내린 후 정상을 정복했다고 떠벌리는 속물의 행태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파인만에 막혀 이야기가 그만 삼천포로 빠졌다. 아무튼 발음이 확실하지 않은 단어는 가능한 한 확인을 하자.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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