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행복한 머리깎기
보스톤코리아  2017-09-04, 11:22:47 
  이발소, 이발관, 이용원. 모두 같은 말이다. 내겐 이발소가 더 가깝다. 요샌 헤어살롱이라 하던가. 

눈물 없인/치르지 못하는 의식 
생지옥 같은 날 
그놈의/악어 이빨 같은 
바리깡 /왜 그리 물고 뜯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날 
머리 깎는 날. 
(이문조, 머리 깎는 날 중에서 )

  아마 9살즈음 일게다. 이발소에 갔다. 한창 바쁜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차례가 되어 이발의자 팔걸이에 얹은 판자위에 앉았다. 이발의자에 직접 앉기에는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이발 조수가 흰색 가리개를 목에 둘러줬다. 중년의 이발사가 조수에게 말했다. ‘걔는 네가 깎아 줘라.’ 차가운 바리캉이 뒤통수에 닿았다. 사각사각 소리에 맞춰 머리가 깎여야 한다. 그런데 머리는 깎이지 않고 뽑히고 있었다. 파고드는 아픔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널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眼은 자연히 감겼고 어금니를 물었다. 완전히 털 뽑히는 닭되는 줄 알았던 거다. 머리카락은 뽑히매, 깎이매 하염없이 목덜미 위로 떨어졌다. 한참 후 이발 조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굳게 감겼던 눈을 뜨려 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내 두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눈은 눈물에 가려 맞은편 거울속 내 모습이 흐려 보였다. 배호가 노래 할 적에, 비내리는 명동거리, 눈물에 젖은 사나이가 된 거다. 아니, 눈물젖은 소년이 되었다. 민망하고, 너무 창피해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눈물은 아픔이었고, 부끄러움이었던 거다. 조수가 하는 말. ‘아프면 아프다고 하지 않구선.’ 그는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내 헤어스타일은 상고머리였다. 눈물 젖은 이발을 해보지 않는 애들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옆자리엔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학교 옆반 아이였을 거다. 이름도 몰랐고, 그저 한 학교에 다니던 같은 학년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도 머리를 깎으러(??) 왔던 거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와 같이 상고머리는 아니다. 단발머리일 테니, 머리는 짧게 자르고, 밑은 퍼런 면도로 긁었다. 그 아이는 나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수십년이 흘렀다. 일본인 동료와 한국에 일이 있어 방문중이었다. 동료가 물었다. 한국엔 왠 이발소가 이렇게 많은 거냐? 그가 이발소 사인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별걸 다 트집잡는다 투덜댔다. 대답해줄 수 없었다. 적당한 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긴 붉고, 푸르고, 흰색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 싸인이 한집 건너 두 건물 사이에서 보였다. 그 많던 이발소 아직도 성업 중인가? 아직도 여자아이들도 이발소에 가는가?

   동네 이발소에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름하여 이발소 그림. 그림엔 행복이란 말이 자주 눈에 띄었다. 머리를 깎고나면 행복해 지는가? 눈물젖은 행복? 이발소 이름이 ‘행복이발소’ 였을지도 모른다.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사도행전 27:3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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