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만에 유해로 고향 찾은 한국전 미 참전용사 |
보스톤코리아 2016-08-22, 13:00:30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한새벽 기자 = 미육군 로날드 M 스파크스 상병이 매사추세츠를 떠나던 해는 19세 꽃다운 나이였다. 그의 유해가 사망한지 65년 만에 8월 16일 고향 케임브리지를 찾았다. 아들을 잃은 부모와 형제의 애달픈 노력이 유해로 나마 고향 땅을 밟게 한 것이다. 브론즈 스타와 퍼플 하트를 수상한 스파크스 상병은 20세가 되던 1951년 북한의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그의 조카인 밥 스파크스씨는 무려 11년간이나 그의 유해를 찾아 헤맨 끝에 마침내 매사추세츠 땅에 안기도록 했다.
론 스파크스씨의 형이자 밥 스파크스씨의 아버지 빌 스파스트는 임종 유언으로 동생의 유해를 찾아달라고 아들에게 당부했다. 밥 스파크스씨는 육군 과거전쟁본국송환처지점(Army’s Past Conflict Repatriations Branch)에 연락해 밥 자신과 아들 제러드의 유전자와 DNA가 일치하는 병사의 유해를 찾았다. 육군 상병 로날드 스파크스씨는 최근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됐으며 하와이에서 로건 공항으로 이송됐다. 그의 유해는 그가 살았던 케임브리지 시 리버스트리트를 거쳐 시청에서 열린 귀환 기념식에 참가했다. 16일 시청에서 열린 귀환식에서 보스톤 총영사관 엄성준 총영사와 권성한 부총영사, 오진관 영사가 참여해 감사패와 소정의 선물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교회협의회 폴김 안디옥 목사와 협의회 목회자들 그리고 한인 신도들이 참여해 감사를 표했다. 엄성준 총영사는 “대한민국정부와 한인커뮤니티를 대신해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생명을 던진 로날드 스파크스 상병에게 감사한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로널드 스파크스 상병은 1951년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후퇴하지 못하고 중공군과의 교전에서 부상당했으며 중공군에 이끌려서 사라진 것이 마지막으로 눈에 띠었다. 가족들은 전쟁 후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널드 스파크스 상병의 부모인 허버트와 베티 스파크스는 아들 소식을 전우를 통해 일부 전해들었으며 아들의 유해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아들인 빌에게 유해를 찾아달라며 “결코 로날드 상병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로널드 스파크스 상병의 유해는 8월 18일 알링톤 소재 드비토 퓨너롤홈에서 웨이크 후 19일 에버렛 소재 우드론 시메트리에 안장된다. 케임브리지시 보훈부 디렉터 닐 맥키니스-베이커씨는 “한국전에서 사망해 행방불명인 매사추세츠 출신 병사는 총 190명에 달하며 케임브리지에만 2명이다”라고 밝혔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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