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100배 더 즐기기 13
보스톤코리아  2012-12-12, 13:39:49 
이번 주는 예술가의 후원자이자 미술수집가였던 이자벨라 스튜어드 가드너가 평생 수집했던 소장품을 전시한 공간, 이자벨라 스튜어드 가드너뮤지엄을 소개한다.

2012년 새로 확장공사를 마친 현대식 건물에서 입장권을 구매한 후 옛 뮤지엄건물로 향하는 유리통로를 지나면 마치 명문가의 집으로 초대받은 듯 유럽풍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고 위협적인 공간이라기 보다는, 어디선가 인상좋은 지배인이 나타나 환한 미소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낼 것만 같은 친근한 느낌의 공간이다. 중앙이 탁 트여있는 ‘ㅁ’(미음자)형 건물의 중앙에 세심하게 가꾼 실내정원의 꽃과 화분, 조각상이 사랑스럽다. 1층부터 3층까지가 겔러리이고 4층은 이자벨라가 거주했던 공간이었다. (현재 4층은 사무실로 쓰이고 있으며 관객의 출입은 통제되어 있다.)

작은 방, 거실, 응접실, 연회장으로도 보이는 겔러리들 이곳 저곳에는 렘블란트, 미켈란젤로, 라파엘, 보티첼리, 마네, 드가, 설젼 등 대가들의 작품이 대수롭지 않은 듯 골동품과, 고가구 사이에 한데 뒤섞여 전시되어 있다. 희귀한 책, 장식적 공예품, 태피스트리(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도 이곳 저곳에 보인다. 다양한 시간대와 문화의 작품이 뒤섞인 말 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한 전시공간이다. 또한 작품은 레이블 없이 자유롭게 감상되어져야 한다는 이자벨라의 철학으로 작품 밑에는 작품정보와 작품설명이 없다. 명화라면 의례 넓은 전시벽에 화려한 액자와 작품설명을 곁들이는 기존박물관의 관행과는 다른 파격적 전시배치이다. 관객들은 작가의 이름과 작품설명에서 자유롭기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고혹적인 가구를 감상하며 유명한 렘블란트의 자화상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이자벨라는 1840년 뉴욕출생으로, 광산업투자와 아마섬유(linen)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데이빗 스튜어드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뉴욕과 파리의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파리에서 학교를 다니던 1856~1858년, 반 친구의 오빠를 소개받게 된다. 그는 보스톤 출신 존 가드너(John Gardner)였다. 그 둘은 이내 사랑을 싹 틔우고 1860년 이자벨라의 고향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신혼부부는 이자벨라의 아버지가 선물한 보스톤의 벡베이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가드너 부부는, 1863년 아들 재키를 출산하지만 아이는 2살이 되던 해에 급성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 후 약 2년동안 이자벨라는 아이를 잃은 슬픔과 우울증에서 온 건강악화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 의사의 조언으로 남편 존은 아내를 데리고 1865년 유럽여행을 떠난다.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비엔나, 파리 여행을 마치고 보스톤에 다시 돌아왔을때 이자벨라는 마침내 우울증을 극복한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비록 부부는 그 후 자식을 갖지 않았지만, 혼자서 자식 셋을 키우던 존의 남동생이 세상을 떠나자 그 조카들을 자식처럼 키우며 살아간다.

유럽여행 이후 가드너 부부는30년에 걸쳐 꾸준히 세계 여러나라를 여행하였다. 유럽 여러 국가를 다시 찾았을 뿐 아니라, 러시아, 일본,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인디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 많은 나라를 탐험하며 문화적 예술의 소견을 넓히고, 작품을 수집하게 된다. 이자벨라는 1891년 아버님이 돌아가시며 남긴 유산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작품을 수집하게 된다. 세계의 여러나라 중 그녀는 특히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좋아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작가, 예술가등과 교류하며 많은 예술작품과 골동품을 구매하였다.

1896년 가드너 부부는 점차 불어나는 소장품을 박물관 형식으로 전시하기위해 박물관설립을 구상하지만, 그 과정에서 존이 세상을 떠난다. 그후 이자벨라는 펜웨이(Fenway)에 습지를 메꾼 터를 구매하고, 남편과 함께 나누었던 박물관에 대한 구상을 본격적으로 실현하고자 그 터에 박물관을 짓기시작한다.
이자벨라는 윌러드 시어스(Willard T. Sears)를 건축가로 고용한 후 그녀가 평소 좋아했던 베네치아 르네상스형식의 건축물을 설계한다. 그녀는 건축의 모든 면에 깊숙히 관여하였고, 건물이 완공된 후 일년 간은 자신의 컬렉션을 원하는 방식으로 전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완성된 가드너의 뮤지엄은 1903년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축하연주와 함께 관객에게 오픈되었다. 그곳은 미술전시, 음악공연이 열리는 예술적 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자벨라는 다양한 유명인사를 디너파티에 초청하여 활발한 사교활동을 펼쳤고, 고상한 상류층 부인들의 전통적 행동과는 다른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행방은 종종 지역 신문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이자벨라는 전시된 작품을 새롭게 재배치하지 말 것이며, 사후 박물관을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기며 1924년 세상을 떠난다. 겔러리 곳곳에는 아직도 세심하게 가구와 액자의 위치를 고민하던 그녀의 흔적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구석구석 고스란히 남아있다. 뮤지엄은, 그녀의 이름을 기리기위하여 이자벨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는 언제나 무료 입장권을 배부한다.
참고자료 http://www.gardnermuseum.org/


문화/예술 컬럼니스트 장동희
Museum of Fine Arts, Boston 강사
보스톤 아트 스튜디오 원장
167 Corey road, suite 205, Boston MA 02135/ph) 857 756 2557
[email protected]/ www.bostonart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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