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 숨겨진 역사, 하버드의 드러난 역사 (1)
보스톤코리아  2012-11-19, 14:26:51 
며칠 전 한국의 지인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영어판 제목은 Verita$: Everybody Loves Harvard)>을 제작한 신은정 감독이 얼마 전 보스턴에서 갑작스런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죽음인데, 나는 오마이 뉴스의 관련 기사를 읽어내려가면서 그녀의 남편이자 웬트워스 공과대학 교수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적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며 비극”이라는 대목에서 공명하고 있었다.

고인이 제작한 <베리타스>는 명실 상부한 세계 최고의 브랜드 네임을 가진 대학 하버드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했던 독립 다큐멘터리다. 가령 이 영화의 영화제목에서는 “진리”를 뜻하는 라틴어 Veritas의 S 가 달러 심볼 $로, 하버드를 지배하는 탐욕의 세계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거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는 아닐게다. 그렇지만 지난 해 11월 뉴욕 국제 독립 영화제 (NYIFF)에서 베스트 감독상을 수상할만큼 화제가 되기도 했고, 또한 소재가 소재인만큼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아쉬운대로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한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하버드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해 왔는가 (신은정 지음, 시대의 창)>을 주문했다.

그녀는 왜 하버드를 조명하기로 마음먹었을까? 종종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하버드를 “찰스강변의 크렘린”이라고 부를 정도로 진보와 자유의 이미지를 가진 하버드지만, 감독은 하버드가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 엘리트를 양성하는 훈련소”이자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이 개입해 온 수많은 전쟁과 내정간섭을 뒷받침해 온 일종의 군, 산, 학 공동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32페이지) 상기시킨다. 즉, 하버드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미국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의 목차를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렸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1950년대에서 1970년대 미국사의 주요 장면들이 톰 행크스의 인생 역정에 배경이자 모티브로 촘촘히 그리고 코믹하게 배치되어 있던 것처럼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 초창기인 1636년 설립된 하버드의 역사는 식민지 시절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사의 여러 장면 속으로 바쁘게 교차 편집되어 있었던 사실을 목차를 보고 새삼 느꼈던 탓이다.

가령 식민지 시절인 1692년. 매사추세츠 세일럼에서 벌어진 마녀 사냥의 광기 속에 구성된 특별 재판부는 거의 하버드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무고한 185명을 법정에 세워 19명을 사형시키도록 1년여 지속된 마녀 사냥의 광기가 수그러들고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으나 코튼 매더 등은 반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일럼의 마녀 소동은 하버드 안팎에서 총장인 인크리스 매더나 그의 아들 코튼 매더를 비롯한 청교도주의의 세력이 약해지는 계기가 된다. (하버드의 본래 설립 목적은 청교도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16세기 말 하버드의 세속화를 비판하며 생겨난 학교는 예일이며, 이렇게 새로 설립된 예일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들 역시 코튼 매더를 포함 하버드 출신이었다.) 아마 여기까지는 굳이 신은정 감독이 알려주지 않았어도, US History를 통해서도 종종 가르치게 되는 “알려진 역사”다.

그런데 아서 밀러의 극 크루서블 덕에 종종 세일럼의 마녀 사냥과 함께 거론되는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 하버드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대중적으로 그닥 알려진 바가 없었던, “감추어진 역사”에 해당한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에 따르면 지성과 진보의 산실같은 하버드가 (그리고 많은 진보적인 학자들을 배출하기도 한 하버드이지만) 실상은 매카시즘이라는 비이성적 광기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매카시즘을 공고히 하는데에 어떤 면으로는 더 일조했다는 것. 그녀는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다>의 엘렌 슈레커를 인용, “공산주의에 너그러운 혹은 약간 좌파에 호의적인 주류학자들”에 대한 매카시의 공격을 비판하는 듯한 하버드가 “실제로 사회주의자이거나 진보적인 교수들은 내치는” 모습을 보여 주었음을 이야기한다. 즉, 하버드가 수용하는 수준의 진보는 일정한 경계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녀들의 비판이 된다.

1920년대 과학이라는 이름의 인종차별, 미국 우생학의 역사에도 하버드의 흔적은 남아 있다. 오랜기간 하버드는 백인, 남성, 상류층만의 리그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또 (리버럴이자 또하나의 하버드 졸업생) 케네디에서 (골수 보수인) 닉슨 시기에 이르는 시기라면 어떨까? 하버드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데 혹은 신무기 개발의 선두에 있었던 존재다. 물론, 최고의 두뇌 혹은 인맥이 모여드는 하버드인만큼, 미국의 권력과 하버드의 권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미국사와 하버드의 역사를 평행으로 놓고 가장 흥미롭게 느껴볼만한 대목은 바로 그 하버드의 권력이 19세기 말에 급부상한 점이라는 것이다. 19세기 말은 (아마 이 칼럼을 통해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소수 산업자본의, 도금시대였다. 부유층 1퍼센트가 미국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1890년경, 미국 경제의 핵심 세력인 모건과 록펠러 가문은 각각 하버드에 천문학적인 기금을 기부, 경쟁적으로 하버드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를 통해 하버드에 대한 영향력을 늘렸다. Veritas가 Verita$가 되어버린 사연이다. (계속)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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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pr.org/2012/09/04/160578836/transcript-michelle-obamas-convention-spe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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