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연속기획 경영의 신,마쓰시다고노스케의 석세스경영론 : 제 1회 초등학교 4학년 중퇴생,마쓰시다 |
보스톤코리아 2012-08-27, 15:23:37 |
안녕하십니까, 홍하상입니다.
제가 작년, 재작년 2년에 걸쳐 오사카와 교토에 있는 마쓰시다 박물관, 자료관에 14번 다녀왔습니다. 그 14번 동안 직접 자료관 관장에게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하면서 마쓰시다 고노스케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요, 앞으로 7회에 걸쳐 우리나라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본 경영의 신이자 파나소닉 그룹의 창업주 마쓰시다 고노스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셔날, 파나소닉 그룹의 창업주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의 일생은 오사카 상인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가난과 좌절, 그리고 그에 대한 극복이 오사카 상인들의 삶과 철학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사카 인근의 와카야마(和家山)에서 3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마쓰시다라는 성은 그의 집안에 있던 수령 700년된 노송으로부터 연유한 것입니다. 본래 마쓰시다 집안은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명성이 자자했던 명문 집안이었습니다. 본래 그의 아버지 마스시다 마사쿠스(松下政楠)는 쌀도매업을 하던 사람이었죠. 또 한 때는 촌의회의 의원을 지내기도 해서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쌀투기를 벌였다 실패하는 바람에 집안이 알거지가 되고,집과 세간은 물론 논밭까지 모두 날리게 되죠. 이것이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6세 때의 일입니다. 가세가 기울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9살 때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해야만 했습니다.그는 어린 나이에 취직을 하기위해 오사카로 나옵니다. 그의 첫 직업은 센바, 즉 선착장의 화로가게인 미야타(宮田)라는 가게의 애보개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애보개로 사내 아이를 쓰기도 하는 풍속이 있었죠. 그의 애보개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화로가게의 청소부터 시작했죠. 비록 직원이 3명밖에 안되는 작은 가게였지만 화로를 잔뜩 쌓아놓고 있어서 가게 안은 늘 너저분했고 따라서 청소량도 많았습니다. 청소가 끝나면 개울로 나아가 물을 길어왔습니다. 이제 겨우 9살난 어린 아이가 하기에는 벅찬 일이었죠. 몸이 약했던 고노스케의 뼈가 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 긷는 일이 끝나면 아침 밥을 먹었는데,주인댁 내외, 그리고 종업원 3명과 함께였습는데,식사라고 해야 무밥에 손톱만한 짠지 반찬이 전부였죠. 아침 식사 끝나고 나서부터는 아기를 업고 집 안팎을 서성입니다. 이윽고 아기가 잠이 들면 화로 닦는 일을 했죠.나무화로, 무쇠화로, 질화로 등을 사포로 닦고 속새풀 줄기로 광을 내었던 것이죠. 이 일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손바닥과 살갗은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사포와 속새풀 줄기가 매일 상처를 냈기 때문이죠. 당시 그의 월급은 한 달에 10전, 요즘 돈으로 치면 3만원 정도로 월급이라기보다는 용돈에 가까웠습니다. 그것도 매월 초하루날 오전, 보름날 오전 등 두 번에 나뉘어 지급되었죠. 비록 10전이라는 작은 돈이었지만 그 10전도 자신이 온전히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고향집으로 보내주어야 했기 때문이죠. 고노스케는 일이 힘들어 매일밤 이부자리에서 훌쩍거리며 울었고 때로는 이부자리에 오줌까지 싸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런 애보개 생활은 3년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혹독한 고생이 있었지만, 센바 즉 오사카 상도의 발상지에서 그는 근면한 생활태도를 이때 확실히 배울 수 있었죠. 이것이 훗날 평생 부지런한 생활습관을 만들어준 하나의 계기였습니다. 훗날 마쓰시다는 언젠가 자신의 성공에 대해 세 가지 비결을 이야기한 바 있죠. <하느님은 내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다. 첫째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애보개, 공장 공원 등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몸이 약해 늘 운동에 힘써 건강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갖게 해주었다.>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지않고 물을 길어오느라 뼈가 휘는 중노동을 오히려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게해준 성공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쓰시다는 겨우 초등학교 중퇴생이었지만,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기에 대성할 수있었던 것이죠. 요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대졸의 학력을 가지고 이태백, 삼태백이니 88만원 세대이니 하면서 자조와 냉소를 퍼붓는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죠.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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