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기고 > 번뇌는 정말 108가지일까?
보스톤코리아  2012-05-28, 14:26:41 
유유상종이 맞는 말이라면, 골퍼와 승려는 서로 통할 지도 모른다. 힌두교도와 천문학자가 함께 우주를 논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모두 108이란 숫자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골프 홀의 너비는 108mm이고 불심 가득한 승려들이 매일 매만지는 염주도 108개의 구슬로 되어 있다. 야구공도 108번 꿰맨다. 번뇌가 108개나 된다고 해서 슬퍼할 건 없다. 해탈에 이르는 길도 108가지나 있다고 말하니까. 서양에서도 이미 오백여 년 전에 108가지 인간의 성취를 이야기했었다.

이쯤 되면 호기심을 가질 만하지 않을까. 108은 신령한 숫자라고. 수학을 싫어했던 나같은 사람은 별로 신기할 것도 없지만 수학자들의 풀이를 들어보자. 108은 1, 2, 3을 각 수만큼 제곱한 후 이들을 모두 곱한 수이다. 즉, 11 x 22 x 33 = 1 x 4 x 27 = 108이다. 전문용어가 있긴 하지만 그건 수학자들의 전유물로 남겨두자. 108은 또 자체에 포함된 수, 즉 1, 0, 8을 합하여 얻어진 숫자 9로 나누어지는 수이다. 8부터 연속되는 9개의 수를 모두 더한 수이기도 하고, 3의 배수를 0부터 시작하여 24까지 9개를 더한 수이기도 하다. 좀 더 골치 아픈 수학식을 소개하자면, 144000 - 144 = (108 + 108) x 666인데, 108 = 62 + 62 + 62 이므로, 144000 - 144 = [(62 + 62 + 62) + (62 + 62 + 62)] x 666과 마찬가지이다. (왜 이렇게 6이 많이 나오는지.)

숫자 108은 기하학과도 친하다. 정오각형의 내각은 각각 108o이고, 중심점에서 각 꼭지점까지 연결하여 별을 그리면 두 선 사이의 각도가 72도가 된다. 정오각형의 안쪽에 꼭지점을 하나씩 건너뛰어 연결하면 별 모양이 된다. 그렇게 되면 각 꼭지점에서 나오는 두 선은 꼭지점의 내각 108도를 정확하게 36도씩 분할한다. 이는 62 + 62 + 62 과 같다. (또 6이다. 그러나 신경 쓰지 말자.) 별의 내부에는 또 다른 정오각형이 형성되고 별의 교차선 외각은 108도가 된다. 궁금하면 원을 하나 그리고 그 안에 정오각형을 그린 후, 그 안에 다시 별려보면 된다.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영국의 스톤헨지는 지름이 108피트이고, 앙코르와트 사원에는 108개의 기둥이 있으며, 서기 475년에 세워진 프랑스의 생드니 성당의 길이는 108미터이다. 기독교 성경에서 “장자로 태어난”과 “진실로”란 구절은 108번씩 나타나고, 야고보서는 108개의 절로 되어있으며, 위령의 날인 11월 2일부터 크리스마스 사이에는 54번의 낮과 밤이 교차하는데 둘을 합하면 108이 된다. 인도의 종교들은 온통 숫자 108로 가득 차있다. 염주에 108개의 구슬이 있다는 얘기는 아까 했고, 힌두교에는 108가지의 춤동작이 있고, 우리 몸에는 108개의 지압점이 있다. 중국의 별점에서는 36개의 좋은 별과 72개의 나쁜 별이 있는데, 이들의 합이 108이다.

자연은 또 어떤가. 물이 얼면 이전보다 부피가 108% 증가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태양 지름의 108배이고,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달 지름의 108배이며, 태양의 지름은 지구 지름의 108배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아 제자리에 오는 데는 2160년이 걸리는데 이는 20 x 108이다. 9개의 행성과 12궁도의 숫자를 곱하면 108이 된다. 인도 천문학에서 음력 한 달은 27일인데, 27 x 4계절은 108이 된다. 윤년은 365일이 아니라 366일이 되는데 이를 모두 곱한 수, 즉 3 x 6 x 6 = 108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로마 알파벳에 순서대로 숫자를 붙이면 kilometer라는 단어의 숫자들을 모두 더하면 108이 된다. 산스크리트어에는 54개의 글자가 있는데, 남성형과 여성형이 있으므로 모두 108가지가 된다. 그리스 시인 호머가 쓴 오디세이의 여주인공 페넬로페는 108명의 구혼자에게 시달리고, 영국의 필립 시드니 경은 108수의 사랑의 소네트를 썼다.

이제 믿고 싶어지지 않은가. 108은 신비한 숫자라고. 어차피 인간은 무엇인가를, 혹은 무엇이든, 믿어야만 마음이 든든해지는 심약한 존재니까. 그러나 신비주의를 자극하는 이 모든 것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다. 오각형의 내부가 어쩌구 하는 것은 원의 각을 360도로 정한 수학자들의 합의 때문이고, 골프 홀의 너비가 그리 된 것은 서양 남자의 주먹 쥔 손의 너비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108만이 특별한 수학적 속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수는, 리차드 파인만이 조금 보여주었듯이, 나름대로의 흥미로운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

인도의 응급 전화번호가 911이나 119가 아니고 108인 것은 인위적인 것이니까 논할 것도 없다. 태양이 지구의 108배인 것이나 거리가 태양 지름의 108배인 것은 우주의 정지 상태를 가정할 때 나타나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환타지 작가라면 혹시 다음번 작품의 모티브를 찾기 위해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까. 하지만 나는 이런 거 하나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허접한 사실들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나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니까.

장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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