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脾)이야기 : 당신도 비위가 약하십니까 혹시 생각이 너무 많지 않으신가요
보스톤코리아  2011-04-25, 12:49:57 
우리는 일상에서 “비위가 약해서 아무 음식이나 먹지 못한다” “비위가 약해서 잘 체한다” 혹은 “비위가 약해서 양치질을 하다가도 구역질이 난다”는 등의 말을 자주 접합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바로 이 비위(脾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비장이란 말이 사실 생소하게 들리실 수 있는데, 해부학적으론 췌장(pancreas)과 비장(spleen)을 포괄하지만 전통적인 한의학적 개념으로 보면 췌장에 더 가깝습니다.
비장은 오행에서 중앙토(土)로 나머지 오행의 요소들의 변화와 균형을 잡아주고, 흙, 색은 황색, 맛은 단맛, 계절은 초가을, 인체에선 입(口), 입술, 살(肉), 육기에선 습기(濕), 생각(思), 사려깊음, 정신적 측면에선 의(意)에 해당됩니다.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은 엄지발가락 안쪽 끝(은백혈)에서 시작하여, 발과 발등의 경계를 따라 안쪽 복사뼈의 앞쪽을 지나 종아리 안쪽에서 족궐음간경과 교차하여 무릎 위쪽 허벅지 안쪽을 지나 복부로 들어가서 비에 소속하고 위와 짝을 이룹니다. 위로 횡경막을 지나 목구멍을 끼고 혀뿌리에 이어지고 혀 아래에서 흩어집니다. 한 가지는 위에서 별도로 올라가 횡경막을 지나 가슴 속으로 들어가 수소음심경과 만납니다.

한의학에선 심장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 비장인데 워낙에 많은 일을 담당합니다. 일차적으로 비장은 음식물의 소화 흡수와 운반을 맡습니다. 이것을 한의학적 용어로는 운화라 하는데 음식물의 영양분을 소화 흡수 운반하고, 수분을 흡수 운반하여 온몸으로 수송하는 기능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비장이 수분을 흡수 운반하는 기능이 줄어들면 불필요한 수분이 몸에 머물게 되므로 습(濕)이나 담음(淡飮)등이 체내에 쌓이게 되거나 부종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수분과 습이 소화기 계통에 머물게 되면 복부팽만감이 생기고, 속이 미식거리기도 하고, 가스가 차고, 뱃속에서 소리가 많이 나고, 혹은 무른 변을 보게 됩니다. 습이 관절에 쌓이면 관절염이 생기고 날씨가 흐리면 온 몸이 무겁고 쑤시고 아파옵니다.

제게 오는 환자분들 중엔 이 습이 뇌에 쌓여 머리가 무겁고 맑지가 않으며 안개 낀 것처럼 뿌옇고 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에게서 이런 증세가 많이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비장의 기능은 비가 소화 흡수 운반하면 기혈이 만들어지게 되고, 기가 정상적으로 혈액을 통제하면 혈액이 맥 밖으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기능이 저하되면 월경과다, 자궁출혈, 혈변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살짝만 부딪혀도 멍이 쉽게 드는 사람은 비 기능 저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비위가 소화 흡수 운반을 잘해서 온몸의 영양이 충실하게 되면 살이 튼튼해지고 팔다리에 힘이 생깁니다. 그 반대가 되면 살이 마르고, 팔다리에 힘이 없고 무기력해지는 근무력증으로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비기능이 실조되면 입술이 옅은 흰색이나 황색을 띠고 윤택함이 없으며 입술이 잘 트고 갈라집니다. 내경 영추편에 “비기(脾氣)는 입으로 통하므로, 비가 조화로우면 입으로 음식물을 구별할 수 있다” 했습니다. 가끔 혀가 까슬까슬하고 음식의 맛을 못느낀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체적으로 혀에 설태가 두껍게 끼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뱃속이 그득한 느낌이 있습니다.

비장 기능이 약하신 분들께 저는 우선 식습관을 조절하라고 말합니다. 밀가루 음식, 단음식, 유제품을 줄이고 생야채 보다는 익힌 야채를 드시라 권합니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하고 식간(食間)엔 위를 비워 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미잡곡밥에 된장국 나물반찬등 한식이 제일 좋습니다.

식생활이 건전하고 절제되어 있는데도 비장 기능이 약하면 저는 생각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묻습니다. 대부분 제 질문에 웃으시면서 “제가 생각이 좀 많아요” 그러십니다. 항시 생각의 끈을 놓지 못하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은 비장 기능을 현저히 떨어뜨립니다.

식생활에 문제가 없는데 비장 기능이 약한 분들은 열에 아홉은 생각이 많은 분들입니다. 크고 작은 일상의 일들, 가족 문제, 심지어 연예드라마 소식까지 쉼 없이 생각에 생각이 이어집니다. 육체적으로 몸을 너무 많이 쓰면 휴식을 취해야 하듯이 머리도 쉬지 않고 쓰면 과부하가 걸립니다.
이런 분들껜 머리를 쉬어라, 생각을 놓아라 일러드립니다. 때론 머리를 비우기 위해 육체 노동을 하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는 운동을 하라고 권해드립니다.

시간이 없을 땐 가만히 호흡에 집중합니다. 천천히 호흡하면서 숨이 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하다 보면 저절로 머리가 맑아집니다.
한국인은 선천적으로 비위 기능이 약한 소음인이 많습니다. 비장 기능을 높이기 위해 식생활을 절제있게 하고 생각을 쉴 줄 아는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한의원 선유당 원장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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