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36)
보스톤코리아  2023-09-07, 14:29:45 
이어서 삼국유사(빈녀양모조貧女養母條)에 등장하는 국선 효종랑을 따라가 보자.
<효종랑孝宗郞이 남산南山 포석정鮑石亭 혹은 삼화술三花述에서 놀때, 문객門客이 매우 빨리 뛰어왔는데, 두 사람의 객客이 홀로 늦었다. 효종랑이 그 까닭을 묻자, 말하길, [분황사芬皇寺 동쪽 마을에 나이가 스무 살 가량의 여자가 눈 먼 어머니를 안고 서로를 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같은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말하길, “이 여자의 집이 가난하여, 끼니를 구걸하여 부모의 은혜를 갚은 지 몇 년입니다. 때마침 흉년이라, 문에 기대어 빌릴 수단이 어려워져,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하여 곡식 30석을 얻어, 부잣집에 맡기어 두고 일을 하였습니다. 해질 무렵 쌀을 싸서 집에 와서 밥을 지어드리고 함께 자고, 새벽이 되면 부잣집에 일을 하러 돌아 가니, 이와 같은 것이 며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말하길, “옛날에 거친 식사(糠秕 – 겨와 쭉정이)에도 마음은 편안했으나, 근래에 향기로운 맵쌀에도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하였다. 여자는 그 사실을 말하니, 어머니는 통곡하고, 여자는 자신이 단지 입口과 배腹를 봉양하기만 하면서, 부모 앞에서 얼굴 빛 관리를 잘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까닭에 서로를 안고 우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느라 늦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효종랑은 그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곡식 1백 휘를 보냈고, 효종랑의 부모도 또한 의복 1습襲 보냈으며, 효종랑의 천 명의 무리(徒)는 조租 1천 석을 거두어 그것을 보냈다. 이 일이 임금님의 귀에까지 닿았는데, 이때 진성왕眞聖王은 곡식 500 석과 집 1채를 하사하였으며, 병사를 보내어 그 집을 지키게 하여 도적을 경계하였다. 또 그 방坊에 기旗를 세워 효양리孝養里라 하였다.
후에 그 집을 기부하여 절이 되었는데, 이름을 양존사兩尊寺라 하였다.> 
삼국사기에서는 효녀 지은으로 삼국유사에서는 빈녀양모貧女養母로 등장하는데, ‘지은知恩’ 과 ‘빈녀貧女’는 동일인이다. 삼국사기에서는 ‘한기부의 백성 연권連權의 딸’ 로, 삼국유사에는 분황사 동쪽 마을에 살았다고 기록된 것도 동일한 지역이다. 한기부(한지부)는 신라 6촌 중의 하나인 금산가리촌인데 금산은 경주 북쪽의 소금강산을 가리키며, 현재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으로 유추한다. 분황사는 현재 구황동에 위치하고 있으니 그 동쪽은 보문동인데, 북천 이북의 동천동 역시 거의 동쪽으로 볼 수 있다. 두 사서를 종합해 보면 지은은 현재의 동천동에서 살았고, 한기부는 배씨 성의 집성촌이었으니 지은 역시 배씨였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지은의 나이, 즉 김효종이 그녀를 도와 주었던 시기에 그녀의 나이는 조금 다르게 나온다. 삼국사기에서는 32세, 삼국유사에서는 20세 가량인데, 그 숫자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아버지 (배)연권을 여의고 홀어머니(삼국유사에는 맹인이다) 를 모시고 살다가, 점점 풀팔이도 어려워졌고 구걸도 마땅치 않아 종살이를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딸을 안고 통곡하니, 삼국사기에서는 김효종이 놀러가다가遊 직접 보았고, 삼국유사에서는 포석정鮑石亭 또는 삼화술三花述에서 놀다가遊 객客으로 부터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김효종이 곡식 100석과 옷을 실어다 주었고, 그의 휘하의 화랑도들이 한 석씩 거두어 준 것과 진성여왕이 이 소식을 듣고 곡식 500석과 집 한 채를 하사한 것 등이 모두 동일하다. 또한 그 재물을 빼앗기거나 도둑을 맞을까 염려하여 왕이 군사들을 보내어 지키게 한 내용도 동일하다. 그리고 그 동네 이름을 효양방孝養坊(리里) 이라고 명명한 것도 같다. 다만 삼국유사에서는 후일 그 집을 기부하여 절이 되었는데, 그 절이 양존사兩尊寺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사실(여부를 떠나)이라면, 삼국유사의 편찬자인 일연이 승려였기에 이 점을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삼국사기에는 그 집이 사찰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고, 대신 ‘표를 올려 그 아름다움을 당나라 황실에 아뢰었다’ 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삼국사기 편찬 당시에도 불교문화가 융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부식의 유교관과 사대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글을 통하여 여러가지를 더 분석해 볼 수도 있다. 신라 하대의 하층민들의 일상과 윤리관을, 또한 하층민들의 생활고로 인해 조금 가진 전답을 팔고(진골 귀족들은 쉽게 구입하고) 품삯을 받는 ‘일꾼’으로 변하거나, 대토지 소유자의 노비가 되거나, 자식을 노비로 파는 것 등이다. 지은의 효행 포상은 유교 윤리의 부각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또한 화랑의 국선 효종랑의 미담은 효를, 왕의 하사품(표창)은 결국 효의 선양을 통하여 충을 강조하여 하대의 무너져가던 왕실의 지배력을 회복하려했음이 아니었겠는가?
기록상으로는 경순왕 김부의 아버지인 국선 김효종이 화랑도의 마지막 우두머리이다.
다음은 화랑도가 조직되기 전에 있었던 원화와 화랑이 조직되어 풍월주가 화랑도를 이끌 당시에도 잠시 존재했던 원화源花(화랑도의 여자 우두머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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