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갑오경장-2
보스톤코리아  2011-05-23, 14:15:48 
원세개(1859-1916)는 중국 청나라의 직예총독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의 심복으로 임오군란(1882)에 조선에 와서 갑신정변(1884)시 일본세력을 물리치고 통리조선 통상교섭사의 ‘통리조선통상교섭(統理朝鮮通商交涉)’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조선의 내정에 일일이 간섭하며 민씨 사대당을 조종했다. 그런데 중국이 일본과 충돌할 것을 알면서 기어이 원병을 조선에 파견하였던 것은 조선이 자기네 독립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나라는 일찍이 중국의 명 왕조를 정복하고 1644년 이래 중국을 통치해 온 지금의 만주족의 정복왕조이다. 그런데 그 청 왕조는 오래 전부터 조선을 속국시해 왔던 것이다.

청나라는 조선의 원군요청을 즉시 받아들여 엽지초(葉志超) 제독에게 군사 3천명을 주어 조선에 파견하였다.
엽지초 제독은 인천에 상륙하지 못하고 6월 상순, 충청도의 아산만으로 왔다.
중국은 1885년의 천진조약에 따라 자기나라가 조선의 내란을 평정하기 위해 원군을 파견한다고 1894년 2월 7일부로 일본에 통고했다.

일본은 청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낸다는 통지를 받자 본국에 와 있던 주한 일본 공사 오도리게이스게(大鳥圭介)에게 해군 육전 대를 인솔하고 조선으로 즉시 돌아가게 했다.
오도리게이스게 공사는 군함 팔중산호(八重山號)를 타고 6월 10일 인천에 도착 즉시 서울로 향했다.
그 뒤로 일본 함대가 인천에 와서 정박했다. 그리고 6월 12일에는 육군소장 오시마요시마사(大島義昌)가 제 5사단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했다.

인천에 상륙한 일본군은 1만 명에 이르렀다. 그들 일본군은 장기 주둔할 계획으로 인천에 주둔하여 그 중 일부가 서울로 향하여 수도 서울의 항구로 알려진 마포에 진을 치고 일부는 서울로 들어와 남산 아래에 본부를 설치하고 경복궁과 서울점령에 대한 전략을 세워갔던 것이다.

그들 일본군은 조선을 도와 동학란을 진압시키려 온 것인지, 아니면 서울과 인천을 점령하려고 온 것인지 처음부터 그들의 동향이 의심스러웠다. 사실 일본군은 조선의 요청에 따라 파견된 것이 아니다. 일본의 변명은 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냈기 때문에 자기네도 군사를 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갑신정변(1884년)이 있은 후, 1885년 청나라와 천진에서 조선문제를 가지고 조약을 맺었다.
이 천진조약의 제3항에 “조선에서 장차 반란이나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여 어느 한 나라가 군대를 파견할 때에는 서로 연락을 취한다.”라고 규정 지었다. 이에 따라 청나라는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면서 그 사실을 일본에 통지했던 것이다. 사실 이 천진조약으로 이후 조선은 청국과 일본 두 나라의 세력에서 자유스럽지가 못했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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