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사랑한 와그너의 여인 김남희
보스톤코리아  2015-09-28, 15:36:57 
집 한쪽 리빙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분청 작품들 사이에 행복한 얼굴로 앉아 있는 김남희 도예가. 92세의 나이에도 운전을 하고 다닌다
집 한쪽 리빙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분청 작품들 사이에 행복한 얼굴로 앉아 있는 김남희 도예가. 92세의 나이에도 운전을 하고 다닌다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김현천 기자 ­= “다시 태어나면 도자기만 만들거예요. 난 분청이 너무 좋거든요.”

하버드 한국학 연구소의 창시자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의 부인으로 더 잘알려진 김남희  도예가(92세) 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생기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한창 꿈에 부풀어 있는 소녀처럼 생명력이 느껴졌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열정임을 삶의 끝에 서 있는 노(老) 도예가에게서 새삼 확인했다. 

오는 10월 3일 렉싱턴에 위치한Lexington Arts & Craft Society 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남희 선생은  50대에 도예를 시작한 늦깎이 예술가다.  

하버드 한국학 연구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을 당시, MIT 와 하버드 도예 스튜디오에서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기왕 도자기를 만드는 것, 한국의 분청을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곳 보스톤에서는 분청을 사사할 스승이 없었다. 

 “관련된 서적들을 도서관에서 찾아봤지만, 한국 작가가 쓴 책은 전무했다. 일본어로 돼 있는 책은 많았지만 전부 분청의 아름다움을 논한 것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김 선생은 “이에 답답함을 느껴 한국을 오가며 직접 분청 기법을 배워 왔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의 전통적인 기법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자유로운 세계를 구축해 입체적이고 대담한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전통적인 분청이 모란, 연꽃을 무늬로 넣은 데 반해 김 선생은 들국화, 민화 속 소재들을 분청에 담아 내는 자유로움을 접목했다. 문양을 찍는 대신 직접 그리고 그 배경을 파내는 자유로운 기법을 접목했다.

“처음에는 옛 도공들의 소박하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운 기법들이 좋아 답습하려 했지.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그 시대 생활상이 그대로 투영된 것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 김 선생의 말이다.

김 선생은 분청의 재료인 흙 역시 한국의 것이 더 좋았지만 욕심을 낼 수가 없어 이곳의 흙으로 자신만의 독특함을 살려 나갔다.

“정말 좋아서 열렬하게 빠졌다”고 당시를 회상한 김 선생은“작품을 빚고 있을 때는 ‘무아지경’이다. 새벽 4시까지 하버드 도예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집에 와 다시 하버드 한국학 연구소로 출근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처럼 김 선생이 한창 열정을 쏟아 만들어낸 분청 100여점이 소개된다. 한국의 전통적인 분청 기법에 김 선생 특유의 현대적인 기법이 접목된 작품들이다.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와의 만남 
김 선생은 일본에서 근 30년, 한국에서 9년, 그리고 보스톤에서 50여년을 살았다. 그중 한국에서 살았던 세월이 가장 짧고 가장 고단한 여정이었음에도 늘 고국을 가슴에 품고 있다. 신문기자였던 전 남편과 사별 후 어린 자녀와 시부모를 부양하느라 고달픈 삶을 살았지만, 지금껏 그곳에 둔 뿌리를 거두어 들이지 않았다.

1950년대 말, 생계를 책임지며 KBS 에서 일본어 통역을 하던 중 한국을 방문한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하버드 한국학자)를 안내하게 됐고, 이후 그의 소개로 보스톤에 건너와 하버드 한국학 연구소에 적을 두게 됐다.  

김 선생은 이후 와그너  교수와 재혼, 하버드 한국학 연구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편, 와그너 교수의 한국 역사, 문화 연구를 돕는 데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는 게 김 선생의 말이다. 

와그너 교수를 돕는 일은 늘 많았다. 하지만 퇴근 후에는 분청을 만들어 내는 일에 몰두했고, 그 시간에 평온함과 행복감을 얻었다. 

하지만, 고단한 여정을 피해갈 수는 없는 운명이었을까, 와그너 교수가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 되면서 김 선생은 작업을 놓게 됐다. “무아의 지경에 이를 정도로 집중해야 작품이 나오는데, 옆에 환자를 두고 그게 잘 안 됐다. 그래서 손을 놓게 됐다”는 것이 김 선생의 말이다. 그게 20여년 전. 그리고, 10여년간 남편을 돌봤다.  

이제 김 선생은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남편인 와그너 교수가 생전에 마무리하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대신 마무리하려 한다.  조선왕조 500년을 커버하는 이 작업은 조선왕조 문과 급제자들의 배경을 혼인관계까지 다 찾아 모은 정보로, 컴퓨터용 한자문자와 로마자, 영문으로 디지털화 시키는 것이다. 

“남편이 살아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것을 10년째 두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김 선생. “이제 남편의 일을 마무리하려면 다른 일은 할 새가 없다”며 못내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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