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위험하다
보스톤코리아  2015-02-16, 12:08:46 
2001년 성난 에콰도르 국민들과 군부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난 자밀 마화드(Jamil Mahuad) 전 대통령은 부패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1년 전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당시에는 성공한 시장이자 정치인으로, 이웃나라 페루와 2백년 넘게 계속된 전쟁을 종식시킨 영웅이었고, 당선 직후 지지율은 70%가 넘었다. 

그가 1년 동안 그렇게 잘못된 정치를 펼친 것도 아니었다. 추락하는 유가 때문에 파산위기에 몰린 에콰도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과 IMF에 긴급구제자금을 구걸하고 다녔고, 우리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에 그랬듯이, 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국내 시장을 개방하고 기업과 고용에 대한 보호정책들을 완화했다. 

또한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버리고 돈을 들고 해외로 달아나는 국내 재벌들을 막기 위해 은행계좌를 동결했고, 가치가 추락하는 에콰도르 화폐를 포기하고 달러를 공용화폐로 도입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였지만,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과 해고같은 고통이 따랐다.  그리고 지지도는 1년만에 15%로 추락했고, 참지 못한 국민들은 군부와 손잡고 그를 축출했다. 이후 에콰도르 경제는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해 지금까지도 허우적대고 있다. 

마화드 전 대통령은 국민들이 마치 환자의 사지절단 수술을 거부하고, 환자의 죽음을 의사에게 뒤집어씌운 성난 가족들 같았다고 회고한다.  금 모으기나 일자리 나누기 등으로 힘을 모아 고통을 이겨내고 경제환난을 극복한 한국인들에겐 마화드의 이런 국민들에 대한 원망이 마음에 와 닿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리더십을 가르치는 하이페츠(Heifetz) 교수는 오히려, 좀 억울할 듯싶은 마화드 대통령이 잘못된 리더십을 펼쳤다며 비판한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리더 한 명이 변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변하도록 도와주는 것인 만큼, 변화의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아픔을 인지하고, 그들에게 포기하지 말도록 마음으로 설득하는 것이라는 것. 

하이페츠 교수는 마화드 대통령이 경제개혁 등의 기술적인 작업들을 관료들에게 위임하고, 본인은 국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상처를 마음으로 어루만져주고, 일시적 고통과 손해를 받아들이도록 격려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즉, 국민들이 스스로, 변화의 불가피성을 깨닫도록 했어야 했다.  그리고 변화에 비롯된 공포와 박탈감은 리더와 전혀 다른 가치로 평생을 살아온 정적들과 군부가 가장 심할 것이므로, 무엇보다 이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가치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도록 서서히 유도했어야 했다. 

종합해보면 참된 리더십은 용기 있게 아픔을 수반한 변화를 주창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적을 포함해 고통을 견뎌야 하는 구성원 모두에게 애정을 갖고 곁에서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 말인즉, 쓴 소리와 함께, 필연적으로 낮은 곳으로 임해 구성원들과 아픔을 공유 하는 것이 리더십인 듯 하다.

하이페츠 교수는 아픔을 견뎌내지 못한 구성원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 매우 위험하다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것은, 꼭 필요한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리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공한 리더로 기억되려면, 일단은 내쳐지지 않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것이 리더의 숙명이니까 말이다.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해 궁지에 몰린 한국의 리더에게 하이페츠 교수의 가르침을 한번 전해보는 건 어떨까? 리더십은 선천적인 것이니 이미 늦었다는 생각은 옳지 않으니 접어두자.  하이페츠는 리더십이란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배움에 의한 실천이라 했으니. 어쨌든 간에 한 시대의 운명과 미래가 리더인 그에게 달렸고, 남은 임기만큼은 그가 살아남아야 한다. 


김형주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플래그십 프로그램, 
공공정책학(Master of Public Policy) 과정에 수학중.
한국에서 방송기자로 9년.
잠시 유엔 한국 대사관에서 임시 공보관으로 근무.
언론과 정치, 경제 영역의 접점에서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찾고자 연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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