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90회 |
그윽한 묵향(墨香)처럼... |
보스톤코리아 2017-04-03, 13:33:35 |
이른 아침엔 비가 내리더니 얼마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늘은 맑아져 있다. 하루동안 하늘을 많이 만나는 편이다. 오가는 운전 길에 계절마다의 하늘빛은 장관이다.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하늘에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를 일이기에 또한 궁금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기도 한다. 오늘처럼 비가 오다가 맑은 하늘을 보이고, 또한 맑은 하늘에서 비가 다시 내리는 이런 날에는 은근히 오색 무지개를 찾아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네 삶과 너무도 닮은 모습인 이유이다. 어느 하루는 사는 일이 버겁다가도 또 다른 하루는 행복에 겨운 날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까운 친구들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는 날은 행복이 가득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혹여 실수한 말은 없었나 돌이켜 보기도 한다. 때로는 밖으로 내어진 말들보다는 가슴으로 들어주는 말이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마음을 고요히 하기 위해 붓글씨를 가끔 쓰기도 한다. 아직은 부족한 모습이지만,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분주함에서 벗어난 나를, 일상생활에서의 떠나온 나를, 지내온 시간들을 가만히 만나볼 수 있는 묵상(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서 이 시간만큼은 묵향(墨香)에 취한 축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모두가 잠든 시간을 찾아 조용히 나와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벼루에 먹을 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정성스레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모아 한쪽으로 계속 갈아야 하는 일이기에 기다림, 참음을 배우게 한다. 벼루에 먹이 갈리기 위해서는 보통 30분에서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요즘 손쉽게 갈려져 있는 먹물들을 구입할 수 있지만, 정성이 들어가야 더욱 귀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성경 구절이나 시(詩) 구절들을 적을 때면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든다. 숨소리마저 결을 이루는 듯 호흡하는 나를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먹을 갈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급한 마음에 한 20여 분을 갈다 말고 화선지에 먹물을 그어본다. 제 색을 찾지 못하고 퍼져버리고 마는 먹물을 만나게 된다. 제대로 쓰여질 때에야 제 색을 내는 것이 바로 먹을 가는 일인 것이다. 급하지 않은 여유로움을 배우게 된다. 기다림과 오래 참음을 배우게 된다. 가끔 먹에서 인생을 배운다. "먹에 새겨진 글귀 가운데 사람이 먹을 갈지 않으면 내가(먹이) 사람을 갈아내겠다"는 뜻의 "人不摩墨 墨摩人"은 늘 귀함으로 마음에 담고 있다. 먹을 갈다 보면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만난다. 돌덩이에 제 몸을 갈아 제 향을 내는 그 먹을 만나며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때로는 신비로움마저 느끼는 순간을 만날 때도 있다. 잠시 멈춘 순간, 침묵이 엄습해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느 목사님의 글을 빌리자면 "침묵은 단순히 내가 입을 다물 때 생기는 말의 부재가 아니라 침묵은 총체적이면서 독립적인 현상으로, 외적인 요소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 나는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 이렇듯 길을 걷고 산을 오르며 내가 걷고 있음마저도 잊은 그 순간을 경험해 본 이는 알 것이다. 이처럼 돌덩이에 자신을 갈아 향을 내듯이 말이다. 이맘때가 되면 그윽한 묵향(墨香)을 떠올리게 된다. 기독교에서 사순절과 함께 고난주간을 준비하며 죽음과 부활 그리고 기쁨의 날을 맞이하는 'Easter Sunday'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를 떠올리면서 "당신 몸을 드리신 예수, 갈리고 찢기고 죽음마저 감당했던 예수 그리고 부활의 승리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생각할 때마다 그 그윽한 그분의 향(香)을 우리가 맡을 수 있는 것이리라. 갈리지 않고는, 찢기지 않고는, 죽지 않고는 다른 생명을 만들 수 없음을 알기에 그분의 사랑을 우리는 깨닫는 것이리라. 벼루에 먹이 갈리듯, 우리의 삶에도 나를 내어놓는 갈림이 있고, 나 아닌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랑과 자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소리 없이도 흐르는 향(香)처럼, 말없이도 느낄 수 있는 그윽한 묵향(墨香)처럼 우리의 삶에도 나를 희생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나눔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다림과 고통 그리고 오래 참음 후에 맞이하는 기쁨과 환희를 우리가 모두 함께 맞을 수 있기를 바램해 보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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