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하기란?!
보스톤코리아  2014-11-04, 16:55:57 
2014-09-12

 노릇의 갖가지의 이름표는 그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인생 여정의 행로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자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식의 부모가 되고 손자 손녀가 되었다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네 삶이다. 

 노릇이란 이처럼 말이 아닌 행동이 함께 따라야 하기에 더욱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면 살수록 더욱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노릇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이것저것 어찌 다 챙기며 살아 나 살기도 바쁘고 버거운데 하며 친구들과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도 마음 한편에 시원하지 않게 남는 그 무엇은 아마도 다하지 못한 노릇의 분량은 아닐까?!

 부모와 자식 간에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다른 이유가 필요치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눈에 오가는 그 무엇이 있으면 그것이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질만능주의로 편안해진 요즘 우리에게 제일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처럼 잃어버린 진한 마음의 정일 게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이 되었든 형제 • 자매가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간에 삶에서 피부로 느끼며 사는 부분이다. 마음이 앞서다가도 지금의 형편이 어려우면 그 마음마저도 접어야 하는 때가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 우리네 삶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겪는 일이지 않던가.

 노릇하기란, 하고 생각을 하니 처음 결혼을 했던 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친정 집에서도 막내로 자라 다른 자매들에 비해 별 불편함 없이 자라왔었다. 그리고 부모 형제를 떠나 훌쩍 미국 땅에 와 2년을 보내며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우리의 입장에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무모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우리는 모험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도움 없이는 독립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래서 그 누구의 강요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2년 6개월의 시집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시집살이는 정신적으로는 버거운 일이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우리 가족이 독립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세 아이를 시어른들께서 참으로 예뻐해 주셨고 시시때때로 필요한 것들을 늘 넉넉하고 풍성하게 해주셨다. 그때는 그것이 삶의 참 행복인지 잘 모르고 살았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시어른들께서 베풀어주신 그 사랑과 정성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다. 이처럼 시부모님께서는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부모의 노릇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노릇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풀어놓으셨던 것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아마도 20여 년이 훌쩍 지난 일일 게다. 이렇게 시댁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정신적으로 버거운 시집살이는 하며 살았지만, 경제적인 여유는 있었다. 그렇게 해서 2년 6개월 만에 분가하고 아파트를 얻어 1년을 살며 그곳에서 막내 녀석을 낳고 6개월 만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그리고 어릴 적 친구도 이 무렵에 미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어 마음이 참으로 든든했었다. 하지만 친구는 아직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입장이라 늘 마음이 안쓰러웠었다. 그때 그 친구가 받기만 한다며 이 '노릇하기'에 대해 늘 미안해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돌고 도는 것이 세상살이가 아니던가. 친구는 열심히 20여 년을 아끼고 절약하며 사업도 일구고 큰 집도 사고 세 아이들 잘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몇 년 전 경제적으로 여유롭던 내 가정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었다. 남편의 건강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며 깊은 고민에 있을 무렵 연년생의 세 아이는 대학교에 보내야 할 형편에 이르렀을 때가 있었다. 새로 시작한 비지니스가 어떻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 처한 그런 때를 나 역시도 겪었던 것이다. 정말 그때는 가족이나 친구 그 누구에게도 '내 노릇하기'에 철저하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아닌 우선 나 추스르기에 바쁜 그런 시간이었다. 세 아이를 일단 대학을 졸업시키는 것만이 '내 노릇(부모노릇)'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10년이 가깝도록 마음의 여유 없이 보내고 나니 막내 녀석이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이제야 깊은 호흡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어릴 적 친구가 오래전 내게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늘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오버랩되어 하던 그 친구의 '노릇하기?!'란 그 말이 내 마음을 스친다. 그렇다, 마음은 있는데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유야 사정이야 어찌 됐든 그 누군가에게 '내 노릇'하며 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인 것을.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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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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