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효소(酵素)'의 열풍은 한국 매스미디어를 통해서나 한국을 방문하며 친지나 친구들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도 선뜻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혼잣말처럼 툭 뱉어버리는 말 '정말 유난스럽기도 해라!'였다. 그것은 어찌 보면 내 몸이 아직은 성하기 때문이었으리라. 한국의 건강프로그램을 한둘 시청하다 보면서 생과 사를 넘나들며 죽음의 계곡까지 오갔던 아픈 이들의 특별한 '효소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 저토록 건강에 대한 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효소(酵素)의 학문적인 어원을 찾아보면 동식물 및 미생물의 생체 세포 내에서 생산되는 고분자 유기 화합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는 익히 김치 효소의 건강에 대한 증명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알지 않았던가. 요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인지도 역시 확실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도 그만큼 현대의학이나 건강 자료에서 과학적인 근거 확보와 치료 치유에 대한 효능과 효과에 더한층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일 게다. 하지만 효소가 이 세상의 모든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건강법으로는 계절 음식을 잘 챙겨 먹자는 주의다. 때로는 무식한 생각이라 여겨질 만큼 입에서 당기는 음식이 내 몸에서 제일 필요한 영양소는 아닐까 싶은 이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여하튼, 계절에 맞는 과일을 챙겨 충분히 섭취하는 편이다. 지난 10월 초 마켓을 들렀는데 미 동북부에서는 흔히 만나는 붉게 물든 열매인 크랜베리(cranberry)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갑자기 온 입안에 가득 새콤달콤 크랜베리의 신맛이 올라온다. 가까이 다가가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머릿속으로 궁리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크랜베리 효소'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결정을 냈다. 그래, 처음의 작품을 한 번 만들어 볼까 싶은 마음에 벌써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비닐봉지에 포장된 크랜베리를 여러 개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득, 크랜베리를 어디에다 담가야 제대로 된 효소를 만들까 생각하다가 집에 있는 작은 항아리가 떠올랐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크랜베리를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받히고 물기를 말린 다음에 항아리에 크랜베리를 한 움큼씩 넣고 설탕도 한 움큼씩 넣고 항아리 뚜껑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닫았다. 잘 익어 네 몫을 다해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크랜베리 효소를 항아리에 넣고 그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 달 동안의 한국 여행을 떠났다. 한국에 도착해 일정을 마치고 난 시간은 여기저기 친구들과 산을 올랐다. 산처럼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솔직하게 만나게 해주는 곳이 없었다. 아직은 여전히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이 산이기도 하다. 자연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효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다른 친구들이 많았다. 산을 오르며 일반 생수보다 오디로 담은 효소엑기스에 생수를 넣어 마시며 산을 오르기도 했다. 오디 효소엑기스 덕분이었을까. 그 많은 일정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 한국의 친구 둘이 오디 엑기스를 큰 병에 담아 선물로 전해준다.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값진 선물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한 친구는 손수 힘들게 산을 오르내리며 오디를 따고 또 한 친구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씻고 말려 담았을 그 오디 효소 엑기스를 받아들며 마음에 감동이 차올랐다. 그 누구보다도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두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다. 오랜 시간 숙성되어 만들어진 효소 같은 쉬이 변하지 않는 그런 곱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지길 마음으로 소망한다. 그 두 친구와 우리 셋이 다시 만날 때는 더욱 깊은 맛으로 숙성된 효소 같은 인연이길.
엊그제서야 한 달간의 한국 여행을 마치고 보스턴 집에 도착했다. 하루는 정신없이 보내고 어제저녁에야 집 안 구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주인을 기다리던 작은 항아리를 보게 되었다. 잘 익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마음에 뚜겅을 한 번 열어보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변화무쌍한 아내의 행동에 또 무엇인가 일을 만드는가 싶어서 힐끗 쳐다보며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 그 곁에 있던 남편과 가깝게 지내던 동생이 효소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효능에 관해 얘기를 시작한다. 그래, 이렇게 서로 오래도록 익고 또 익어 숙성된 쉬이 변하지 않는 효소 같은 정과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삶이길….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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