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뒤뜰의 숲에는 이슬이 가득하고 촉촉이 젖은 잔디밭을 밟으며 깊은 묵상에 잠긴다. 자연은 이토록 내게 늘 선물을 주는데 그 선물을 받으며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올해는 집 뜰에 핀 들꽃들이 여느 여름에 비해 늦게 피는가 싶다. 가끔 바깥 뜰을 거닐며 나팔꽃 피기를 기다렸는데 오늘 아침에야 곱게 핀 나팔꽃을 만났다. 햇살 고운 이른 아침이면 수줍은 얼굴을 이슬에 씻고 환한 웃음꽃을 피우는 나팔꽃은 빛바랜 내 유년 시절의 뜰을 서성이게 한다. 가만히 눈 감으면 온몸으로 파고드는 고향의 하늘과 바람과 풀 내음 모두가 그리움이 되어버린 얼굴들이 하나둘 스치고 지나는 아침이다.
나팔꽃이 우리 집 뒤뜰에 피기 시작한 것은 벌써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3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버린 우정 사이에는 어릴 적 친구가 있다. 철없이 재잘거리고 깔깔거리며 웃어대던 어릴 적 친구가 한동네에 살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닌가. 이 넓은 미국 땅에서 운전으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이리저리 마음을 재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고 축복이다. 언제나 곁에서 삶의 희·노·애·락 가운데 말없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내 형제·자매보다도 더 고마운 믿음직한 친구가 있어 감사하다.
햇살 고운 이른 아침 진초록 풀섶에 아롱다롱 매달려 반짝이는 이슬과 환하게 웃음꽃을 터뜨리는 나팔꽃이 필 때면 친구의 어머니(서금주 여사님)를 생각한다. 처음 나팔꽃 씨앗을 선물해주셨던 어머니의 그 고운 사랑이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담장을 타오르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언제나 만나면 맑고 밝은 환한 웃음으로 양손 벌려 안아주시는 친구 어머니의 고운 모습처럼 나팔꽃은 친구의 어머니와 참으로 많이 닮았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그 무엇과도 은은하게 조화를 이루는 겸손하신 어머니의 모습은 소박하고 수줍은 모습의 나팔꽃과 너무도 닮았다.
유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그렇게 우연처럼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청소년기를 맞으며 친구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조용하시지만 강직하신 성격에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신앙관이 뚜렷하신 개신교 신자였다. 그 어머니의 철저한 사랑과 교육을 받고 자란 사 남매(두 아들과 두 딸)의 신앙도 만만치 않은 열정적인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다. 마침 친구의 언니는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이 친구의 철저한 신앙과 믿음 생활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많이 받게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다른 친구들이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닐 때 둘이서 기도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렸지만 참으로 깊은 신앙 얘기를 나누며 파고들기도 했었다. 그 깊은 뿌리에는 친구 어머니의 깊은 묵상과 기도와 믿음이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친구의 언니는 지금은 개신교의 목사가 되어 열심히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그 귀한 시간이 있었기에 타국 멀리 떠나와서도 30여 년 동안 변함없는 우정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인 게다. 서로 각자에게 맡겨진 바쁜 생활에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해도 안달하지 않고 보채지 않으며 기다릴 줄 아는 여유는 둘의 우정 사이에 믿음과 배려가 있기 때문일 게다.
"얘, 나는 내 아들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그런다!"
이 얘기는 친구와 둘이서 친구 어머니의 얘기가 나오면 빼놓지 않고 하는 멘트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조용하신 성품에 참으로 겸손하시고 그러나 강직하신 성격에 불의를 보시면 불같으신 분이시다. 아마도 이 성격은 형제 중 친구가 어머니를 제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의 어머니는 평생을 군(육군 중령)에 계신 아버지 곁에서 지내셨고 자식에 대한 사랑과 교육도 철저했다. 그리고 남부럽지 않게 키운 아들을 장가보내고 며느리를 맞아들였다. 친구 어머니는 여느 시어머니들처럼 며느리에게 지시하는 시어머니는 아니셨다.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면 어찌 좋은 일만 있을까.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부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려면 어느 집이나 얼굴 찌푸리는 일들 한 두 번 정도는 겪지 않던가. 친구의 어머니는 무던한 성격의 큰 며느리를 곱게 여기셨다. 털털한 성격의 며느리가 깔끔하신 성격의 시어머니 마음에 모두 만족할 리 없지만, 내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 까닭에 며느리를 탓하시지 않으셨단다. 그것은 딸자식을 키우는 친정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내 아들을 보고 싶을 때 편안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시단다. 참으로 지혜로운 시어머니의 모습이시다. 세 아이를 키우며 친구 어머니의 그 말씀이 더욱 깊이 새겨진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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