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16회
보스톤코리아  2011-09-26, 12:47:43 
하나가 좋으면 또 하나는 더 좋을 수 없다는 얘기가 머리를 스쳐 지난다. 그것은 욕심일지도 모를 마음이기 때문이다. 두 개를 모두 가질 수 없을 때 하나를 내려놓아야 함을 알면서도 미련이 남을 때가 있지 않던가. 당장 눈에 보이게 무엇인가 바꾸고 변화를 주고 싶은데 환경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않을 때를 우리는 삶에서 종종 만나기도 한다.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며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의논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하여 실천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엊그제부터 우리 집의 대 공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이 집을 짓고 이사를 했을 때 막내 녀석이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으니 이 녀석 나이와 우리 집의 나이가 똑같다. 이 녀석이 열아홉 살이 넘었으니 이 집에서 19년을 살아온 것이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때로는 버거웠던 시간들의 틈새에 낀 추억들이 꽤 많은 집이다. 몇 년 전 남편이 새로운 비지니스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아이들 셋이 모두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비지니스와 가까운 곳의 시내로 한 번 옮겨볼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마음처럼 그리 쉬이 결정 내리기가 어려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삶에서 아주 작은 것들이 내게 그렇게 소중한 추억이 될 줄을 몰랐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써클 안의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다른 집들보다 약간 높이 앉아 있어 동네의 움직임이 한눈에 다 들어오게 된다. 아이들이 어려서도 밖에서 노는 모습을 집안에서 훑어보곤 했었다. 20여 년 전의 집의 디자인이 그러했던지 요즘처럼 아기자기 한 멋은 없지만 훼밀리 룸이 널찍해서 세 아이가 뛰어놀고 공부하며 자라기에는 참으로 편안했던 공간이었다. 여기저기 구석마다 장난감들이 널려 있고 그림 그리기 좋아하던 큰 녀석의 크레파스가 굴러다니던 때의 추억들.

이렇듯 많은 추억이 곰실곰실 일어서는 데야 이유가 되었든 핑계가 되었든 간에 이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 3년을 망설이며 기다리던 끝에 이제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론은 그냥 여기에서 살기로 말이다. 남편도 처음에는 한 번 움직여볼까 생각했었는데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굳이 움직여야 할 뚜렷한 이유나 목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20년이 다 되도록 사는데야 여기저기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곳일까. 세 아이가 대학생이다 보니 아이들 학비와 용돈을 대는 일도 만만치 않기에 집을 고치는 일은 아예 미루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몇 년을 집을 가꾸거나 꾸미기 위한 시간과 돈의 투자는 예전에 비해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절약하며 살게 되었다. 가정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돈을 아끼고 절약한다는 데야 집의 구석의 페인트가 마음에 거슬린다거나 바닥의 카펫이 들썩거리는 것쯤이야 서로 참아야 할 부분인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잘 견디는 것인지 버티는 것인지 별 불만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아는 지인이 다녀간 일과 올여름에 우리 집 방문을 기다리던 분을 생각하면 속이 답답해졌다. 우리 집 강아지가 훼밀리 룸에 실례했던 곳으로부터의 냄새는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핑계이고 탓일 뿐이다. 강아지는 주인을 따라 밖에 나가면 좋아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했던 것이다. 다만, 시간을 맞춰주지 않았던 주인의 불찰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누구의 탓을 할까. 말 못하는 강아지에게 말 잘하는 주인이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싶어 웃음이 먼저 솟는다. 그래, 그런 것인가 보다. 강아지를 좋아하니 이런 일도 생기고 이런 일이 생기니 강아지만 탓하지 말고 시간을 맞춰 훈련을 잘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여름의 참기 어려웠던 강아지 녀석의 실례 덕분으로 더는 미룰 수 없어 훼밀리 룸 카펫을 마루로 깔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집 강아지 '티노' 덕분에 구석구석 쌓인 먼지도 떨어내고 몇 년 동안 건드리지 않던 옷장의 옷가지들도 꺼내어 정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동전의 양면성처럼 이쪽 저쪽의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때로는 행복해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싫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피식하고 웃음 한 번 지어보는 것이 삶인 까닭이다. 어찌 됐든 삶이란 지금을 맘껏 누리며 사는 것이 지혜롭다는 생각이다. 지난 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지 않던가. 지금 이 시간마저도 내일이면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되어 그리움이 될 것이기에.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성자
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나, 시간, 기억 2011.09.26
필립 K. 딕의 원작을 영화화한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주인공 데커드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레플리컨트(인조..
업소탐방 111 : 김원태 건축 & 시공 [1] 2011.09.26
화려한 경험과 재능, 열정을 한인들에게 쏟고 싶어
신영의 세상 스케치 - 316회 2011.09.26
묵은 먼지를 떨어내며….
Come Back Again 2011.09.26
디지털카메라의 이해와 활용 컬럼 76
가볼만한 행사, 놓치기 아까운 행사 2011.09.26
Preview Opening: 2011 Great Glass Pumpkin Patch At MIT 일시: 9월 30일 금요일 저녁 5시~8시 장소: Mass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