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과 풀먼 파업 (Pullman Strike) |
보스톤코리아 2010-09-13, 13:57:15 |
노동절날 누군가 내게 질문을 했다. 한국과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5월 1일 “메이데이”를 국제 노동절로 기념하는데, 왜 미국만 9월 첫째 월요일이 노동절이냐고. 1882년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뉴욕 유니온 스퀘어에서 노동자가 벌였던 퍼레이드가 9월 5일이었고, 국제 노동절은 1890년 처음 기념되었으니 사회주의 국가들과 동일한 날에 노동절을 기념하고 싶지 않아서 별도로 지정한 날이라는 해석은 약간 불완전하다.
19세기 노동 환경과 노동 기사단의 탄생 남북전쟁과 재건, 산업화와 도시화, 미국내 (서부로의) 영토확장이 숨가쁘게 진행되던 19세기 중반 이후의 미국 노동자들의 상황은 상당히 열악했다. 철강과 철도, 정유와 금융, 그리고 입법부와 연방 사법부까지 완전히 장악한 골리앗 재벌들이 막대한 부를 증식해가고 있던것과 대조적이게도, 노동 계급 아동들은 이미 10세 전후에 하루 10~12시간씩 일을 하는 노동자가 되어야했을 만큼 빈곤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황의 피해도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이 되어 임금 삭감등의 고통이 따랐다. 기업들은 이른바 파업 방해자 (Strike-breakers)들을 고용하거나 파업 노동자들을 청부살인하는 방식으로 노동 운동을 탄압했다. 이에 전국단위 노동조합 연합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결국 1869년에 조직된 노동 기사단 (Knights of Labor)이 1879년 중앙집권적인 산별노조로 재편되면 전국의 노동조합을 아우르는 최초의 조직으로 성장, 노동자들의 대(對)기업 협상력이 강화되었다. 특히 노동 기사단은 성별이나 인종, 나이, 숙련도를 불문하고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지급과 유청소년 노동 폐지, 그리고 8시간 노동시간 쟁취 같은 목표를 내걸었는데 당시의 관점으로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다. 헤이 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그러나 노동기사단은 다소 어이 없이 와해의 길을 걷는다. 메이데이의 기원이 되는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제 도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런데 5월 3일 시카고의 헤이마켓에서의 시위에서 경찰이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하면서 6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튿날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벌어졌고 이를 해산하려고 출동한 경찰들 사이로 누군가가 투하한 폭탄으로 인해 일곱명의 경찰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다친다. 이에 분노한 경찰이 단순 구경꾼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여 20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의 유혈사태로 번진다. 범인은 오리무중이었으나 경찰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벌여 수백명을 구금, 그 중 8인의 아나키스트 파업 주도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그들 중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시위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폭탄과 관련된 증거도 없었으나, “급진적 사상을 가졌다”는 것을 빌미로 이들에게 사형이 언도되었다. (이후 헤이마켓 사건은 조작으로 알려졌다) “시카고의 8인”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헤이마켓 사건은 전세계 지식인과 노동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을 다짐하는 메이데이의 기폭제가 된다. 그러나 정작 미국 내에서는 노동 기사단이 위험한 정치적 사상을 가진 아나키스트들의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영향력을 잃어간다. (백인 숙련 노동자 중심의 AFL이 같은 해 결성되었다) 어쨌거나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5월의 노동절을 꺼렸던 데에는 헤이마켓 유혈 사태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보다 정확하겠다. 흥미롭게도 국가 권력이 삭제하고 싶었을 5월의 역사가 단지 헤이마켓사에 그치지는 않는다. 1894년 5월, 미국 철도 노동조합이 풀먼 객차회사(Pullman Palace Car Company) 를 상대로 벌인 파업을 벌였는데, 이 파급효과도 상당했다. 발단은 일리노이 소재 풀먼 객차회사가 불황을 이유로 철도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삭감했던것. 그러나 그 지역에 같은 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노동자 주택의 임대료는 그대로 올려 받았고, 철도 노동자들에게 빈번한 각종 산재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파업을 촉발한다. 미국의 기차들은 대개 풀먼 객차회사와 연결되어 있었기때문에, 파업은 전국 규모로 확대되었고 물류와 우편이 멈추게 된다. 파업은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연방 군대를 파견하면서 유혈사태로 진압된다. 몇달 후 대통령은 9월의 노동절을 국가 공휴일로 하는 안에 사인했지만, 바로 그 순간 이미, 8시간 노동, 실질 임금, 단체 교섭권 같은 것들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는 탈색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것, 그것이 역사다. 더 읽어볼 책 SAT II에서도 AFL, CIO, AFL-CIO, 혹은 IWW 등 노동조합 연합체 각각의 성격이나 풀먼 파업과 그 파급 등이 종종 등장한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0장, 11장, 13장이 다소 어렵긴 하지만 다양한 관련 정보를 담고 있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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