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숨길수 없는 열등감
보스톤코리아  2015-02-16, 12:14:17 
  폭설, 폭설해도 이런 눈사태는 오랜만이다. 삼한사설三寒四雪이라 해야겠다. 이삼일은 춥다가, 사나흘 간격으로 눈이 내리니 말이다. 사나운 눈사태 중에 가내두루 평안하신지.
  음악선생님은 누누히 강조했다. 바쁜 중에 음악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게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노래를 해야 할 때가 자주 온다.’ ‘매번 유행가만 부를테냐. 가곡 한두곡 쯔음 준비해라’ ‘유행가가 아닌 노래를 해야 할 자리도 있을게다.’ 

  아주 오래전이다. 내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손을 잡고 마주섰다. 오고가는 눈길은 더 없이 그윽했는데, 신랑이 먼저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신부가 노래를 받았다. 춘향가 중의 한 대목이다. 반주는 없었다. 있었다 해도 없는게 차라리 나았다. 

‘이리 보아도 내~사랑. 저리 보아도 내~사랑’
‘둥둥둥둥 어허둥둥 내사랑.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노랫소리는 흩어지지 않았고, 잔잔했다. 밤새워내린 보스톤 눈처럼 소복히 쌓여만 갔던 거다. 간지럽지도 않아 손가락이 오므라 들지도 않았다. 일순, 노래는 좌중 술냄새도 왁자지껄 떠들석한 소리도 데려갔다. 조용해졌고, 노래소리만 가볍게 날라다녔던 거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된 터. 그렇다고 듣던 하객의 귀를 압박한건 아니다.

오히려 듣는 이들의 침 삼키는 소리만 이따금 추임새로 들어섰다. 꼴깍. 신랑은 바리톤, 신부는 알토였던가. 신랑은 교내 중창단원. 신부는 모 텔레비젼 방송국 합창단원. 
  노래 듣던 한 친구가 청중의 입에서 흘러내리던 침을 닦게 한마디를 던졌다. ‘저러다가 쟤네들 애 맹글겠다.’ 분위기를 깨는건 아닐텐데, 듣는 이들을 꿈에서 깨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악 웃음이 터졌기 때문이다. 하긴 신랑신부 첫딸이 허니문베이비라나 뭐라나.
‘불쌍하도다/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불쌍하도다 중에서,  정현종) 

  내겐, 숨길 수 없는 열등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던 날이기도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열등감 중에 음치에 가까운 내 가창력이 가여웠던 거다. 노래는 역시 노래 잘하는 이가 불러야, 부르는 이도 듣는 사람도 즐겁다. 노래 못하는 이에게 노래를 강요하지 말지니. 아직도 난 내가 타고난 음치라고 믿고 있었다. 음치에 관한 강박증은 여전하다. 숨기려 해도 가난한 내 목소리가 들린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이사야 49:13)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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