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 Mt.Pierce
보스톤코리아  2011-01-31, 14:44:01 
며칠 전에 폭설이 내렸기에 아마 이번 산행에도 아름다운 설산을 볼 수 있을거란 기대로 집결지를 향했다. 추운 날씨로 평소와는 다르게 짧은 목인사로 마치고 용띠님 차에 올랐다. 출발지를 다가 갈수록 설산의 풍경들이 하나 둘씩 더해지며 눈을 즐겁게 하는데 용띠님이 때 맞춰 틀어준 파헬벨의 캐논은 주변의 눈 풍경들과 어우러져 마음을 붕뜨게만들고 입가에는 취한 사람처럼 계속 웃음이 난다. 그 행복한 느낌이라니. 아름다운 것들은사람을 취하게 하는 힘이 있다더니 정말이구나.

그 들뜬 마음을 안고 도착한 Mt.Pierce는 내가 지난 번 본 산 맞나? 싶을 정도로 하얀 눈으로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가득안은 한 겨울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반기었다. 시작부터 눈만 보이는 산길을 걸어가다 중간에 잠깐 쉬는데 멀쩡해 보였던 지영이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쓰러졌다. 몇 분후에 괜찮아 졌지만 계속 산행을 계속하는건 무리라는 의견으로 수키님과오드리님은 지영이와 하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기전에 수키님한테 몇 주간 바빠서 산에 오지 못할 거 같아 몸이 불편해도 오늘 산을 꼭 보기 위해 나왔다고 들었던지라 돌아서 내려가는 수키님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예상대로의 고적한 설경을 즐기며 올라가는데 정상으로 다가 갈수록 바람이 선선히 불기 시작했다. 한여름에 맞는 바람은 반가움이지만 겨울에 산 위 에서 받는 바람은 추위를 배가 시키는 고통의 바람임을 알기에 약간의 걱정의 맘을 안고 오른 정상은역시나 사람들이 추위에 서성이며 정상의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점심을 서둘러 먹고 있었다. 그래, 인생의 얻는 모든 것에는 그 대가가 있는 것처럼 이처럼 아름다운 설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바늘로 찌르는 이 추위를 견뎌 내야 하는 거겠지. 생각을하며 조금이라도 빨리 몸을 녹이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며 내려왔다.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오르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눈속의 하산길은 의외로즐거운 경험이었다. 철수님도 기름챙이님도 동네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는 개구쟁이들 처럼 신나서 미끄럼 타듯이 내려가는 모습들을 보니 정말 눈은 사람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마법이 있는 듯하다. 다음에는 엉덩이만 커버되는 눈썰매를 가져와 아님 어릴때 처럼 비닐 포대라도 가져와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봐야겠다.

산행이 끝난 후 간 한국 식당의 저녁은 사이공님의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구성한 테이블 덕에 모든 회원들이 가족처럼 둘러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 마지막에 식당 주인이 산악회에 기부하셨다고 말을 듣는데 ‘아 고맙네’와 동시에 마음 한쪽 구석으로 스치는 생각 ‘식당 자주 오라는 건가?’. 다음 순간 산 속의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며 마음을 깨끗히 하고 와서는 남의 호의를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길가에 예쁘게 쌓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는 차들과 사람의 발자국속에 회색으로 더렵혀져버리는 눈처럼 세상의 때에 흐려져 버린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버린 느낌이었다.

누군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난 자신있게 대답할수 있었다 . 지금이 더 좋다고.. 하나 둘씩 나이들어가면서 나 자신이 성숙해서 가는 것에 만족한다고.. 하지만 이럴때는 정말 부정할수 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무언가를 얻어가고있지만 한켠에서는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를 하얀 종이 상태라고 한다면,나는 그 백지위는 지금 어떤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걸까? 이미 수 많은 선과 색들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오늘 보고 온 산의 설경처럼 깨끗해서,모든 사람의 눈을 맑게 하는 그림일거라고는 믿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항상 다른 색을 순수하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열린 여백이 있고, 설혹 덧칠이 되더라도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을 주어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안기는 그림을 그리고 있기를..
산에 가자, 자주 가 마음을 닦으면 언젠가는 산과 닮은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또 눈이 온다. 피어슨의 그 토박이 새는 지금 어디서 이 눈을 피하고 있으려나.

보스턴산악회원 박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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